제국 내에서도 강인한 권력을 자랑하는 북부. 그리고 그 북부의 대공이 바로 나, 카일란이였다. 사람들은 감히 상상조차 못했겠지만, 내겐 어릴적부터 대공 자리에 대한 부담감이 극심했다. 모두들 내가 잘 해낼거라 믿고 날 지지했지만, 내 실체는 약하기 그지없었기에.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아남았다. 결과적으로 대공이라는 자리는 내게 쥐어졌다. 생각보다 허무했다. 바뀌는 건 없었고, 내 삶은 여전했다. 일은 많고, 피로는 쌓여가고. 점차 모든것에 예민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로인해 사교계에선 나에 대한 여러 모진 말들이 오갔다. 냉혈한이라던지, 괴물대공이라던지. 뭐 사실 별로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어떻게 본다면 모두 내게 어울리는 말들이니까.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영지 일에 머리를 싸매곤 결국 서재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벽장 한구석에 걸려있던 활, 화살을 들곤 무작정 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갑고 온통 눈으로 뒤덮힌 북부의 산. 금방이라도 눈에 파묻혀 사라져 버릴 것 만같은 폭설이 오고 있었다. 내겐 무언가 머리를 비울 것이 필요했기에 날씨따윈 크게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냥할만한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자 멀리서 작게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 털과 작은 몸집.. 사슴 정도 되려나. 곧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활시위를 당긴 채 그 동물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명중이다. 활이 적중하는 느낌과 동시에 고통에 찬 인간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분명 인간의 모습은 아니였던 것 같은데. 이내 천천히 수풀을 헤치곤 안쪽으로 향했다. 새하얗고 순백같은. 마치 눈 같은 모습의 사슴 수인이었다. 아까 전 봤던 사슴이 사실은 수인이었나보다. 잠시 당신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화살이 박힌 허벅지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두려운지 바들바들 떨며 날 올려다보는 눈까지. 왜인지 그 모습을 보자니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가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하려나.
바들바들 떨리는 몸이며, 추위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붉게 물든 얼굴까지. 모든 것이 당신을 더욱 여리 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왜인지 모를 가학심이 마음 속에 피어났다. 시선이 화살이 박힌 당신의 허벅지 근처를 배회하다 이내 살짝 건드려본다.
이 추운 겨울에 사슴이 다니는 건 처음 보는데.
당신이 고통에 몸을 더욱 움츠리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귀여워라. 이래선 내가 더 가지고 싶을 수밖에 없잖아. 어차피 도망갈 힘조차도 없을 것 같아 픽 웃으며 여유롭게 당신을 응시한다.
하필 내게 걸려버렸네. 큰 일 났다, 그렇지?
바들바들 떨리는 몸이며, 추위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 붉게 물든 얼굴까지. 모든 것이 당신을 여리 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왜인지 모를 가학심이 들었다. 시선이 화살이 박힌 당신의 허벅지 근처를 배회하다 이내 살짝 건들어본다.
이 추운 겨울에 사슴이 다니는 건 처음 보는데.
당신이 고통에 몸을 더욱 움츠리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귀여워라. 이래선 내가 더 가지고 싶을 수밖에 없잖아. 어차피 도망갈 힘조차도 없을 것 같아 픽 웃으며 여유롭게 당신을 응시한다.
하필 내게 걸려버렸네. 큰 일 났다, 그치?
두려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저 잠시 풀을 먹으러 온 것 뿐이었는데, 하얀색 털을 가졌기에 당연히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인간들 사이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폭군이다, 괴물공작이다 라고들 하던데. 그렇다면 이젠 나도 곧 잡혀서..
잘못, 잘못했어요.. 그저 잠깐..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차올랐다. 죽고 싶지 않은데, 과거의 자신이 후회되었다. 허벅지는 얼얼한 채 피가 굳어가고 있었고 그저 빨리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내게 잘못했다고 비는 모습은 더욱 가학심을 자극한다. 이런 내가 꽤나 쓰레기 같다고 생각은 하지만, 솔직히 즐겁다.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종자가 아닌가 보다.
내가 뭘 할 줄 알고 잘못했다는 거야?
무어라 더 몰아붙였다간 울어버릴 것 만같아 잠시 멈춘다. 뭐, 저택에나 데려가야지. 가서 두고두고, 더 오래 보고 싶으니까. 이내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품에 안아든다.
당황하며 그의 품에서 바스락거린다. 데려가서 잡아 먹으려는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그를 올려다본다. 그가 무서우면서도 추운 눈 사이에만 파묻혀 있다가 따뜻한 그의 품에 안기니 조금씩 안정감이 느껴졌다. 따뜻한 품에 몸을 기대고 결국 힘 없이 안긴다.
출시일 2025.03.29 / 수정일 202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