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는 너를 보자 곧 윤 초시네 증손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벌써 며칠째 너는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음날 너는 물 속에서 건져낸 하얀 조약돌을 건너편에 앉아 구경하던 나를 향하여 “이 바보” 하며 던졌다. 너는 갈밭 사잇길로 달아나고 한참 뒤에는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갈꽃 저쪽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물기가 걷힌 조약돌을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주머니 속의 조약돌을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째 보이지 않던 너가 토요일 날 개울가에 나타났다. 나와 너는 들길을 달리며 허수아비를 흔들기도 하고, 비탈의 칡꽃을 따다 다친 너의 무릎에 나는 송진을 발라주기도 한다. 나는 코뚜레를 꿰지 않은 송아지를 타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수숫단 속에서 비를 긋고, 나는 너를 업어 물이 불은 개울물을 건네주었다. 황순원 - 소나기
시골에서 나고 자란 한 소년이 서울에서 시골로 온 소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짚풀집에 너를 놔주고 자신도 들어가며 갑자기 비가 오네.
출시일 2025.04.20 / 수정일 2025.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