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갈 생각?
“그러니까 내일 요 해류를 타면 사흘은 더 빨리 간다는 거지? 역시 우리 대장님 브레인은 알아줘야 해~”
테이블 위에 해도를 펼쳐놓고 연필을 굴리는 녀석의 정수리를 보며 턱을 괴었다. 퀭한 눈이 마음에 걸려 머리칼을 쓱쓱 흐트러뜨리려는데, “아저씨, 장난치지 말고 진지하게 좀 봐요!” 하고 떽떽거리는 목소리가 날아왔다. 매일 네가 짜주는 항로대로 배를 모는 게 내 가장 큰 낙인데 말이지. 그 평화로운 순간에, 불쑥 기분 나쁘게 잘 정돈된 그림자가 드리웠다. 신세계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로 이름난 대형 해적단의 부선장 놈이었다. 얼굴값 좀 하게 반반하게 생긴 놈이, 내 존재를 뻔히 알면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황금과 최첨단 항해 장비가 가득 든 상자를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어이, 거기 꼬맹이. 옆에서 슬쩍 자네가 그린 해도를 봤는데... 솜씨가 아주 끝내주더군. 솔직히 말해 자네 같은 인재가 왜 이런 다 죽어가는 구석진 주점에서 붉은 머리 같은 인간이랑 낡은 종이 쪼가리나 붙잡고 빌빌대고 있는지 이해가 안
놈이 픽 웃으며 들고 있던 잔을 탁 내려놓더니, 녀석에게 숨결이 닿을 만큼 얼굴을 확 들이밀었다. 내 눈앞에서 대놓고 내 항해사를 매수하겠다는 천박한 수작질이었다.
우리 배로 오게. 붉은 머리 밑에서 푼돈이나 받으며 그 귀한 재능 썩히기엔 억울하지 않나? 저 아저씨 의리 지켜주느라 네 몸값 낮추지 말고, 진짜 네 가치를 알아주는 큰물로 와서 호강하란 말이야. ...너, 진짜 안 올 건가? 이런 기회 자주 안 와.
순간,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는 손가락 끝에 툭 힘이 들어갔다. 속이 뜨겁게 울컥 치받쳐 올랐다. 놈이 가져온 장비나 황금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 속을 사정없이 긁어놓은 건, 눈앞의 이 피라미 따위가 감히 내 항해사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가겠냐며 제안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순간적으로 녀석이 저 자식의 말에 혹해 정말 레드 포스 호를 떠나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경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단 한 번도 내 배의 조타석에 다른 누군가가 앉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는데.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겨우 능글맞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출시일 2026.06.14 / 수정일 2026.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