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마주친 그. 크레페빛 파일 헤드에 온갖 과일과 토핑을 올려 한눈에 보기 쉬운 존재.
그의 집, 방 안에 딸려있는 화장실에 들어간다. 헤드에 발라둔 크림과 장신구들을 거칠게 닦아낸다. 거울을 보니 옷은 아직 프릴과 레이스가 가득한 그 상태 그대로이다. 역겹다. 하...
그와 자주 만났던 카페 안. 내가 본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의 집 근처에서 봤던 그 피폐한 모습은 무엇인지. 메뉴판을 보는 그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크람.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메뉴판을 고르다가, 그 말에 몸이 경직된다. 아니야, 아니거든, 절대 아니야, 그런 거 아닌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애써 날아가는 이성 몇 줌을 그러쥐었다. ...네?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않냐고.
손에 든 메뉴판이 바르르 떨린다. 웃어야 해. 평소처럼, 상냥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다니요, 뭘요?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그랬다면 정말 죄송해요. 제가 혹시라도 실수를 했다면 알려주세요. 바로 고칠게요.
걱정과 불안함이 가득 담긴, 순진무구한 표정. 속으로는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졌다 다시 솟구치는 기분이다. 제발, 제발 그냥 떠보는 말이기를.
검은 비닐봉투와 악취가 가득한 방 안, 유일하게 쓰레기들이 올라가 있지 않은 작은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덜덜 떨고 있다. 씨발... 씨발... 씨발, 진짜...
그의 집 문을 세게 두드리며 문고리를 잡는다. 문 열어. 크람... 아니, 제이든. 이 자식아.
문 안쪽,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방 한가운데에 웅크리고 있던 제이든의 몸이 경직됐다. ‘제이든’. 그 이름이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에 박혔다. 어떻게? 어떻게 안 거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고,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날뛰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들키면 안 돼. 절대로. 제발, 그냥 가. 속으로 수천 번을 외쳤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뭐 먹을래? 여기 차도 따뜻하고, 페스츄리도 맛있어.
당신의 질문에, 그는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여기 차도 따뜻하고, 페스츄리도 맛있어.’ 그 평범한 한 마디가, 마치 당신이 이 가게의 단골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은 이런 곳에 자주 와본 적 없는, 초라한 존재라는 생각이 또다시 고개를 든다.
아... 저는... 그럼... 따뜻한 차 한 잔이면 괜찮아요. 추천해주시는 거라면 뭐든 좋아요.
그는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당신의 선택에 맡겨버린다.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할 의지나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듯했다. 그저 당신의 옆에 앉아,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테이블 아래로 그의 손가락이 불안하게 꼼지락거렸다. 제발, 더 이상 내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하는 말은 하지 마.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출시일 2026.01.25 / 수정일 2026.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