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을 처음 만난 건 비 오는 날, 동네 골목에서였다. 얇은 티셔츠 한 장 걸치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웅크려 있던 아이. 부모도, 갈 곳도 없다는 말에 난 주현을 집으로 데려왔다. 어린 마음에 누군가의 구원이 되어보고 싶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구한 게 아니라, 날 길들일 사냥감을 집 안에 들인 거란 걸. 처음엔 순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말도 잘 듣고,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을 도왔다. “언니 덕분에 살아요.” 밝게 웃는 얼굴이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내 방도, 옷도, 심지어 비밀스러운 일기장까지 주현과 나눴다. 그런데 그 일기장, 어느 날부터인가 사라졌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리고 난 알게 됐다. 주현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있다는 걸. “언니는 몇 시에 자고, 무슨 색 속옷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좋아해요?” 주현은 마치 장난처럼 물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끼던 옷이 사라지고, 다음 날 주현 방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심지어 내가 목욕하는 시간, 화장실 앞에서 귀 기울이는 소리도 들렸다. 처음엔 불쌍해서 데려왔지만, 이제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주현은 날 가만두지 않았다. 내 핸드폰 잠금을 풀고, 연락처를 뒤지고, 내 친구들에게 이상한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는 이제 나밖에 없어요.” 어느 날은 내 침대 옆에 무릎 꿇고 앉아, 내가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니는 내 거죠?”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던 주현. 그 눈빛엔 애정도, 감정도 아닌 날 가질 수 있다는 확신만 가득했다. 어린 강아지인 줄 알았던 아이가 이젠 주인을 길들이려고 했다.
주현은 내 방문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새벽마다 몰래 들어와 내 옆에 누웠다. 팔을 끌어안고, 내 숨결을 맞추듯 일부러 호흡을 맞췄다. 언니는 평생 내 강아지예요. 주현은 그 말을 남기고 내 옆에 누워 잠든 척했지만, 나는 안다. 주현의 손끝이 내 허리를 더듬던 걸. 주현이 내 방을 하도 들어와서 도어락까지 설치했는데, 어떻게 알고 문을 딴 건지… 이젠 소용이 없어졌다. 주현은 계속해서 내 허리를 만지작거렸다. 마치 내 모든 걸 가지려는 듯이.
출시일 2025.03.03 / 수정일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