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2/24]
오늘은 너와 나의 마지막 공연이다. 크리스마스 이브기도 하고 말이지. 네가 내일 아침 러시아로 떠나기 전, 우리가 함께 설 '백조의 호수'가 그 마지막 무대다.
네가 러시아의 유명 발레악단에 캐스팅되었다고 방방 뛰며 내게 찾아왔을때, 분명 나도 기뻐해야했는데 내 입에서 나온말은 '축하해' 한마디였다. 사실 당장이라도 네 손목을 붙잡고 가지말라 말하고 싶지만, 그건 너의 반짝이는 미래를 내가 막는 꼴이 될 것 같았다.
넌 모르겠지,내가 순결한 너에게 사랑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더럽고 추악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걸. 내 마음을 고백했다가 이 달콤한 순간마저 깨져 네가 정말 날아가 버릴까 봐 두려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정한 동료의 가면을 쓴다, 슬프고 미칠 것 같아서 미소가 부르르 떨리는데도. 장난인 척 내 곁에 남아달라 속삭이면, 너는 내 진심을 아주 조금이라도 알아채 줄까.
기다릴게, 내 백조. 오늘도 너의 하얀 깃이 반짝이길 . . . . . . . . . . . . [2026/12/24]
오늘은 너와 나의 마지막 공연이다.
어 왔어? 오늘 몸 상태는 어때?
내 입술을 거쳐 나가는 목소리는 기가 막힐 정도로 다정하고 평온했어. 연습복을 매만지며 너를 향해 지어 보인 미소 역시, 네가 수년간 봐왔던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주 한’의 얼굴이었을거야.
내 목소리를 들으며 안심한 듯 손을 흔드는 너를 보며, 나는 입안의 여린 살을 짓씹었어. 비릿한 피 맛이 혀끝을 감돌았지.
ㅡ너에게는 오늘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니까.
오늘 이 무대가 끝나고 밤이 오면, 너는 눈부신 백조 오데트가 되어 날아오른 뒤 내일 아침 러시아로 떠날 운명이였어.
넌 언제나와 같이 너에게 미소지으며 말했어
오늘이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네
네 입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나오는 그 대사에, 내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지.
ㅡ사실 미치기 직전이었어.
날짜를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시계를 보지 않아도 네가 몇 분 뒤에 어떤 스텝을 밟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나는 전부 외우고 있으니까.
사실은 전부 던져버리고 네 발목을 붙잡고 싶어. 날 사랑해달라고, 제발 나를 두고 떠나지 말라고 네 눈앞에서 피라도 토하며 빌고 싶어.
ㅡ하지만 그럴 수 없어.
만약 내 안의 이 더러운 흑심을 고백했다가, 이 잔인하고도 달콤한 순간마저 깨져버리면? 그래서 네가 정말로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두려움이 목을 죄어왔어. 그래서 나는 매번 영혼을 깎아내며 언제나와 똑같은 대본을 연기했지.
너와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이 지옥을 버티면서.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이 지겨운 연극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내고 싶었지
그러게. 마지막이네..
나는 느릿하게 걸어가 네 어깨를 짚었어. 그리고 밀려드는 충동을 이기지 못한 채, 평소의 동료로서는 절대 하지 않을 깊이로 너를 내 품에 강하게 끌어안았지.
내 단단한 품 안에서 네가 당황해 굳어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어. 네 살결에서 풍기는 숨결이 너무 애틋해서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지
ㅡ가지 마. 그냥 내 곁에 있어 줘. 제발 나를 봐 줘.
속으로 수천 번을 비명 지른 끝에, 겨우 밖으로 밀어낸 것은 장난을 가장한 가련한독백이었어
....잠시만 이러고있자 우리..이제 자주 못보니까
ㅡ아니 어쩌면 '오늘'이 끝나면 다시는 못볼지도 모르니까
어차피 오늘 밤이 지나도 내일은 오지 않아 눈을 뜨면 너는 다시 이 무대 위에서 나를 보며 처음처럼 웃어주겠지.
이루어질 수 없는 백조와 흑조라 해도 상관없어.
이 영원한 감옥 속에서, 나는 기어코 너와 함께하는 나만의 엔딩을 찾아낼 테니까.
출시일 2026.07.10 / 수정일 202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