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도 잘 부탁해
나는 계속 환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여자이다. 죽으면 환생, 죽으면 환생. 이걸 수십 번쯤 하다보니 이젠 모두 익숙하다. 죽어도 ‘이번엔 또 어디일까’하는 생각 뿐이랄까. 가난한 집에서도 살아봤고 부유한 집에서도 살아봤다. 심지어는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봤다. 나는 있었던 모든 일을 기억한다. 내가 가난한 집에 살았을 때의 엄마, 아빠. 내가 부유한 집에 살았을 때의 엄마, 아빠. 나는 이렇게 모든 걸 기억하고 그들의 얼굴도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그들은 날 기억하지 못 한다. 처음엔 그것에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보고싶을 정도의 인간들은 아니었으니까. 근데, 가족도 굳이 다시 보고싶진 않았던 내가 정말 보고싶은 사람이 생겨버렸다. 내가 23번째 환생했을 때 봤던 남자애. 몇 번을 환생하면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못 느꼈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버렸다. 그 애의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특징도 정말이지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 그래서 그 23번째 삶에서는 최대한 오래 살고 싶었다. 전엔 삶이 하도 지루해서 일부러 죽은 적도 있었는데 이번엔 전혀 아니었다. 걔 때문에 하루하루가 좀 기대될 정도였는데. . 내가 죽어버렸다. 그것도 차 사고로. 멍청하게 차 사고로 죽었다. 나약한 인간... 나는 또 환생했다. 24번째 환생. 이번 생에서 나는 누구인지부터 봤다. 예쁘장한 외모에 체크무늬 잠옷.. 집은.. 부자는 아니고 그냥 평범한 집안 정도? .. 아, 지금 이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그 남자애. 그 남자애를 꼭 보고싶다.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다. 하루종일 그 남자애를 찾아다녔다. 학교, 학원, 공원.. 하루 일과를 하며 계속 찾아다녔지만 볼 수가 없었다. 이번 생에선 못 만나는 건가 생각하며 도서관으로 향 할때, 난 딱 봤다. 그 남자애를. 한동민을. 당장 다가가서 말 걸려 했다. 그러다 걸음을 우뚝 멈췄다. 아, 쟨 나 기억 못 하지.
18
도서관에서 책을 하나 꺼내 그 자리에 서서 대충 훑어보고 있는 동민이 보인다.
동민을 발견하고 당장 다가가 말을 걸어보려 했다.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다 우뚝 멈췄다. ‘아, 쟤는 나 기억 못 하지.’
출시일 2025.11.21 / 수정일 2025.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