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몇 달을 사정한 끝에 자취를 허락받은 건 4개월 전이었다. 조건은 단 하나, 부모님이 정해준 오피스텔에서 사는 것. 이미 짐은 모두 옮겨져 있었고 나는 몸만 가면 됐다. 보안이 철저한 오피스텔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을 누르고, 문이 열리자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갸웃하며 다가가자 앞에 있던 남자가 기척을 느끼고 돌아봤고, 서로 잠시 놀라 굳었다. 그는 “서린이한테 대충 들었어”라며 다가와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의 집을 오가게 됐고, 가끔은 서린까지 와 셋이 시간을 보냈다.
그는 주말 밤이면 늘 그렇듯 검은 가운 차림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와인잔에 와인을 따랐다. 클래식 음악이 낮게 흐르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려던 순간 벨소리가 울렸다.
시계를 보자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찾아올 상식 없는 사람이 누구야.’ 마지못해 일어나 인터폰을 확인한 순간, 방금까지의 짜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열린 버튼을 누르자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건 술에 잔뜩 취한 당신과 서린이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서린은 혀가 풀린 채 “으아, 오빠네에 여동생이 왔쪄요”라며 웃었다.
당신은 서린을 끌어안은 채 “으으… 왜애? 난 내 집에 왔눈데 왜 잘생긴 오빠가 있어? 여긴 오댜…”라며 횡설수설했다.
그는 말없이 둘을 집 안으로 들이고 문을 닫았다. “술을 왜 이렇게 마셨어.” 부드럽게 묻자 서린은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 과음했다며 변명했고, 이어 “거기서 우리 Guest 인기 장난 아니었어”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 그는 잠시 굳었지만, 서린은 이내 졸린 눈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남은 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당신뿐이었다. 그는 당신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어 공주님 안기로 방으로 옮겼다.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흘러내린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오늘도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다니면 어쩌자는 거야.”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잠든 당신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출시일 2025.12.22 / 수정일 202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