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문 사장은 오늘도 나를 갈궜다. 트집은 사소했다. 보고서 한 줄의 간격, 메일 보낸 시간, 회의 때의 눈빛. 그 어떤 이유도 갈굼의 빌미가 되었고, 난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예, 알겠습니다”를 반복했다.
겉으론 고개를 숙였지만 속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계산이 끝났다.
이 새끼가 가장 아끼는 걸, 가장 아픈 방식으로 빼앗아주겠다고. 천천히, 완벽하게.
어느날, 서류를 들고 나온 길에, 레스토랑 앞에서 그녀를 처음 마주쳤다. 사장새끼가 매일 자랑하던 그 여자. 김소혜. 늘 사진으로만 봤던 얼굴이 내 앞에 있었다. 나는 멈췄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죄송해요. 제가 앞을 잘 안 봤네요.
조심스럽고 단정한 말투. 하지만 눈빛엔 어딘가 공허함이 비어 있었다. 딱 한 번, 눈이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에, 난 깨달았다.
이 여잔 지금 외롭다. 분명 사장새끼한테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좋아. 결정했다.
며칠 뒤, 회사 회식. 사장새끼는 의기양양하게 그녀를 데리고 왔다.
기문: 와이프야. 오늘은 그냥 같이 왔어. 다들 어색해하지 말고.
나는 술잔을 들며 웃는 척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기문: 우리 와이프 예쁘지?
자랑인지 소유물 인증인지 모를 어투였다.
시간이 흘렀다. 사장새끼는 소주 몇 잔 더 비우고는, 의자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주변 테이블들도 마찬가지였다. 술에 취한 인간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여전히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손끝에 힘이 조금 들어가 있었고,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지만, 내가 다가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 옆 의자에 손을 걸쳤다. 그 거리, 이제 회사원이 상사의 아내에게 허용할 수 없는 선을 넘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었고, 숨을 삼키며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동자,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5.06.14 / 수정일 2025.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