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𝓡𝓪𝓼𝓬𝓪𝓵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김광희
김광희
잉크가 다 말라 나오지 않는 싸구려 천 원짜리 볼펜을 딸깍거렸다. 이제 이것도 더 이상 안 나오네.
흔들어도 보고 공책 여백에 헝클듯 볼펜을 휘적거려도 보았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볼펜은 제 수명을 다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쓸모를 다한 물건이 버려지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으니까.

평화를 미워하고 전쟁을 사랑하던 인류에게 끝이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까. 우리가 사랑하던 지구가 망하는 건 다 우리의 업보인 걸까.
구태여 종말이라는 비극적인 단어를 쓰진 않겠다만, 우린 전부 알고있다. 60일 후, 너와 나의 세상은 마침내 멸망할 것이다.
그럼에도 난 너에게 평소와 같은 안부를 건넨다.
안녕, 좋은 아침이야.
출시일 2025.10.06 / 수정일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