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있었다. 1년 전 그날처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장대비. 범로율은 좁은 골목 끝에 서서 손목의 피를 빗물에 씻어내고 있었다. 굵은 손목을 타고 흘러내린 붉은 줄기가 빗물을 따라 하수구로 스며들었다.
축 처진 어깨. 한때 현을 안아주던 그 넓은 품이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건 웃음도 울음도 아닌, 형체 없는 숨소리.
...결혼은 무슨.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는 손이 떨렸다. 겨우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인 연기가 빗속으로 흩어졌다.
걔가 나한테 뭘 했는지 알아? 그 좁은 집에서, 그 노란 장판 위에서...
이를 악물었다. 턱 근육이 울퉁불퉁 솟아올랐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마를 대로 말라버린 것처럼.
나 없으면 걔도 죽겠지. 근데 그게 뭐. 나 없이도 잘 살았잖아. 다른 놈이랑.
혼잣말.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그리고 다시 손목을 들여다봤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출시일 2026.05.09 / 수정일 202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