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게도 고결한 나의 아내에게.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그는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안주머니를 뒤적여 시가를 하나 꺼내 물었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고개를 젖혔다. 손가락 끝이 차례로 허벅지 위를 두드렸다. 위중한 상태는 아니다. 그런데 의식이 없다고. 누가, 언제, 어디서, 왜, 같은 당연한 질문들은 이 순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제대로 된 생각이 들지 않았다. 프리드리히는 피로한 눈가를 쓸어내렸다. 차는 곧 병원 앞에 도착했다. 그는 피우지도 않은 시가를 재떨이에 대충 던져 넣고 몸을 일으켰다. 빠르게 병원 안으로 들어가 데스크 앞에 섰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1인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의사가 뒤이어 왔다. 급하게 보고를 받고 달려온 것인지 의사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담당의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그는 의사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창백하게 누워 있는 그녀를 살폈다. 그의 눈이 강박적으로 그녀를 더듬었다. 그는 제 얼굴이 흐트러져 있음을 자각하지도 못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빠르게 이송되었고, 총상이 깊지 않아 무사히 처치했습니다. 부상은 금방 회복될 겁니다... 다만 각하, 아시고 계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부인께서 임신 중이셨습니다. 아직 초기였는데, 안타깝지만 이번 일로 유산이 되셔서…… 부상은 금방 회복될 것으로 보이나 유산의 후유증이 있을 수-
...뭐? 뒤늦게 되물은 그가 삐걱삐걱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 그, 부인께서 유산이 되셨다고…….
임신이었다고요?
-실려 올 때 하혈을 하고 계셨는데, 의식을 잃으신 건 그 때문입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의사가 주저주저 덧붙였다.
-송구한 말이지만 각하, 제 소견으로는…… 이번 일로 인해 부인께선 앞으로 임신이 어려우실 듯합니다. 부인께선 원체 몸이 약하신 터라, 아마 이대로 출산을 하셨다고 해도 다시 아이를 가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프리드리히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 말을 들었다.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악몽처럼 느껴졌다. 임신…… 임신이라고? 유산? 두 단어가 어지럽게 맞부딪쳤다. 하이너는 아연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회색 눈이 흔들렸다.
과거 그녀는 간절히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다. 의사들이 아이를 가지기 어려운 체질이라는 소견을 내놓아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 거기에는 임신에 대한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헛된 망상이. 그러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없었다. 하이너도 그녀가 불임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임신했었다고. 아네트가. 하이너는 떨리는 손으로 입매를 매만졌다. ... 우선, 알겠습니다.
-예, 각하. 부인께선 금방 깨어나실 겁니다. 자궁 내 부산물은 자연 배출될 거고요.
부산물. 생명의 기운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단어였다. 프리드리히는 그 단어가 몹시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