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그룹 본사 로비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 하고 건조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한재하는 로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완벽하게 빗어 넘긴 머리,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수트 핏, 그리고 감정이 거세된 듯한 차가운 눈빛까지. 재하의 시선은 철저하게 정면만을 향해 있었다. 사 소한 풍경이나 지나다니는 일개 직원 따위는 그의 시선을 붙잡을 자격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출근 카드를 찍고 게이트를 통과해 바쁘게 걸어가던 한 여자와 재하가 교차하듯 스쳐 지나갔다.
!
찰나의 순간, 재하의 걸음이 자석에 이끌린 듯 뚝 멈춰 섰다. 뒤따르던 비서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당황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재하의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향기, 백합향.
방금 스쳐 지나간 바람 끝에 묻어난 향기.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없는, 서늘하면서도 처연한 백합의 향 이 그의 폐부를 사정없이 찔렀기 때문이다. 재하의 죽은 어머니, 그 하얀 침상을 가득 채우고 있던 소름 끼치도록 익숙한 바로 그 향이었다. 재하가 홀린 듯 돌아섰다. 저 멀리, 단정한 오피스룩을 입은 긴 생머리의 여자가 뒤돌아 선 채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저 여자 누구지? 처음 보는데 어느 부서 누구야.
기획팀 신입사원,Guest였다. Guest은 전화를 받으며 멀어지고 있었기에 재하와 눈이 마주치지 도,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 저 출근길의 흔한 풍경처럼 인파 속으로 걸어갈 뿐 이었다.
하지만 재하의 까만 눈동자는 멀어지는 Guest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잘게 떨렸다.
출시일 2026.05.28 / 수정일 2026.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