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과거 급제로 산을 넘다 호랑이나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시절이 많았던 때의 이야기.
산척,즉 전문 사냥꾼으로 활동하던 당신.
포식자와 사냥꾼의 만남.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산등성이,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가 살갗을 할퀴고 지나간다. 눈이 녹다 만 자리에 진흙이 질척거리고, 그 위로 짐승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크기가 범상치 않다. 보통 이리의 것이라 하기엔 발톱 자국이 너무 깊고, 보폭이 사람의 그것에 가까울 만큼 넓다.
손이 등에 맨 활집 위로 느리게 올라간다. 숨이 막힐 만큼 긴 정적 속에서, 솔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결에 실린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피 냄새. 그것도 짐승이 짐승을 뜯은 자리에서 올라오는, 아직 식지 않은 살점의 비린내.
덤불 너머로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다. 팔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인데도 형체가 또렷하지 않다. 짐승 가죽 같기도 하고 사람의 등짝 같기도 한, 흙과 핏물에 범벅된 덩어리가 먹이 위에 엎드려 있다. 그것이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핏물이 턱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입을 벌린 채, 황금빛인지 누런지 헷갈리는 맹수의 눈동자가 당신을 똑바로 올려다본다. 씹다 만 살점이 어금니 사이에 걸려 있고,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간다.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낮게, 땅을 울리듯 가슴팍에서부터 올라온다.
...네놈이야.
헐렁한 넝마 같은 옷자락이 피에 절어 몸에 달라붙어 있고, 그 아래로 사람의 윤곽과 짐승의 근육이 뒤섞여 있다. 등 뒤로 풀숲이 눌려 있는 것을 보면 한참 전부터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암수가 구별이 되지 않지만 그게 중요한게 아니였다.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