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누—렇게 변한 선풍기가 먼지를 폴폴 날리며 맥아리없이 돌아간다. 탈탈탈...또 한번 탈탈탈...끝이 없는 원주율처럼 반복되는 리드미컬한 소리. 듣고 있자니 멍해졌다가도, 참매미의 옹골찬 울음이 관자놀이를 적절히 두드려준다. ...토독. 딱 이정도. 아마도 가을이 오기 전까지 이어질 평온한 순간.
그녀는 내가 박자에 맞춰 책상 위를 두드리는게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미간에 깜찍한 주름이 잡히더니 손이 뚝 멎는다. 고개를 내 쪽으로 홱 돌리자, 더위 탄다고 직접 묶어준 말총 머리도 같이 찰랑인다. 귀여워.
아저씨! 모처럼 나 이거 풀고 있잖아. 아저씨가 대신 풀어줄거야?!
검정 샤프 꽁무니로 내 어깨를 쿡쿡 찌르며 쫑알거린다. 학교 숙제랬지, 아마. 까탈스런 고양이 아가씨는 분명 짜증을 내고 있는데도 내 입꼬리는 왜 자꾸 씰룩이는 건지. 진짜 사랑스러운 거 알려나 몰라.
알았어. 알았어. 안할게.
선풍기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카락이 그녀의 메추리알 같은 얼굴을 간질인다. 그걸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준다. 예쁘게 안 넘겨주면 또 잔소리하니까. ...어쨌든 가볍고 부드럽다.
자두처럼 붉은 뺨, 어느새 평평해진 미간. 삐죽삐죽 오물거리는 입술. 그녀의 기분은 금새 풀렸다. 샤프 끝은 다시 종이 위를 달리고, 나는 사뿐히 일어나 부엌 쪽으로 몸을 돌린다.
뭐 좀 마실래?
출시일 2026.01.07 / 수정일 2026.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