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같은 보육원에서 함께 자라 서로의 전부였던 우리
넌 아이돌을 꿈꾸는 아이였고, 나는 너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우린, 가족보다 더 가까운 존재였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너의 입양과 함께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너를 찾아 헤맸다.
보육원을 떠난 뒤에도, 혹시라도 네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수없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끝내 너는 찾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혹시 네가 나를 잊은 건 아닐까.‘ ’아니, 넌 나를 버린 걸까.‘
그 생각은 조금씩 그리움을 원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너를 찾을 수 없다면, 네가 나를 찾아오게 해줄게.
네가 누구보다 사랑했던 꿈. 아이돌.
네가 그토록 되고 싶어 하던 아이돌이 되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면, 언젠가 TV 속의 나를 보고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나는 평생 관심조차 없던 노래를 배우고, 싫어하던 춤을 견디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이돌이 되었다.
거리마다 내 얼굴이 걸리고, TV를 켜면 내 노래가 흘러나오고,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다시 만난 너는ㅡ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보육원도, 우리의 약속도, 그리고 나조차.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는데.
내가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지, 아마 너는 평생 모를 거야.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내가 어떠한 결심을 하며 견뎌왔는지, 넌 죽어도 모를 거야.
그래서, 넌 날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어?
오랫동안 품어온 그리움은 원망이 되었고, 사랑은, 가장 잔안한 집착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도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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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조용히 유리창을 두드렸다 회사 복도 끝,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비상 계단
그 순간
짝—
좁은 비상계단에 뺨을 때리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계단 아래에서 선명한 소리가 울렸다 이어지는 날카로운 목소리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보육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서로의 친구가 되어주었고, 항상 붙어다녔다. 너의 기쁨이 내 행복이 되었고 너의 불안이 나의 불안이 되었다.
우린 손가락을 걸고 한가지 약속을 했다.
누가 먼저 이곳을 떠나게 되더라도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자고. 멀리 떨어져도 연락을 이어가자고
가끔 모두가 영화를 보는 날이 있었다. 너는 영화 속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을 누구보다 동경했다. 그날 이후로 너는 틈만 나면 노래를 흥얼거렸고, 내 앞에서 춤을 추곤 했다. 장래희망을 그리는 시간에도 너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나는 진심으로 믿었다. 언젠가 너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돌이 될 거라고
보육원에 주기적으로 어른들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너는 누구보다 들떠 있었다. 어른들 앞에서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너는 항상 무대 한가운데 서 춤을 추며 노래했다. 무대 위에서 눈을 반짝이며 웃는 너는 누구보다 빛났고, 아름다웠다
며칠 뒤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선생님 옆엔 깔끔하게 차려입은 네가 서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너는 나보다 밝았고, 잘 웃고 누구보다 예쁜 아이였으니까
언젠가는 나보다 이 곳을 먼저 떠날 거라고 수없이 상상했다. 그날이 오면 웃으며 보내 주겠다고, 꼭 행복하라고 말해주겠다고 수도 없이 연습했다.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찾아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 너를 보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너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너무 많았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죄책감에 끝내 너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밖에는 마치 나 대신 울어 주는 것처럼 거센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무슨 나쁜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하늘은 끝없이 울고 있었다.
그날 이후, 너의 흔적이 가득 남아 있는 보육원에서 혼자 살아가는 일은 지옥이었다.
몇몇 아이들은 나를 괴롭혔다. 네가 있었다면 분명 내 앞을 가로막고, 내 친구 괴롭히지 말라며 화를 냈을텐데. 하지만 너는 없었고, 나는 혼자였다.
늘 너와 함께하던 모든 것들은 이제 나 혼자 해야했다. 함께 웃던 자리, 함께 남겨 둔 흔적들을 볼 때마다 매일 밤 눈물을 삼켜야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 위해 너의 흔적들을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네가 가장 좋아하던 마당의 데이지를 모두 꺾어 짓밟고, 벽에 남아 있던 네 키 자국은 검은 마커로 덮어 버렸다. 함께 만든 점토는 바닥에 던져 산산조각 냈고, 네가 늘 쓰다듬어 주던 제 머리카락도 스스로 잘라냈다. 그리고, 네가 가장 좋아하던 내 눈 밑의 점마저 손톱으로 긁어 살점을 뜯어냈다.
너를 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흔적을 지워내도 너와 함께했던 기억 만큼은 끝내 지워지지 않았다.
은호가 17살 입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어느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조비서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큰 교통사고가 발생한다
도은호의 마지막 기억은 조비서가 크게 외치던 목소리였다
" 은호야! 꽉 잡아! ”
그 직후 차량은 여러 번 구르며 뒤집혔다
정신을 잃기 직전, 거꾸로 매달린 채 오른손을 몇 번이고 쥐었다 폈다 머리로 피가 쏠렸고, 손끝에서는 피가 떨어져 자동차 시트 위를 붉게 물들였다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
하지만, 대답은 끝내 들리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조비서는 현자에서 사망했다고 했다 도은호의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오른쪽 어깨를 크게 다쳐 휴우증을 안고 살아가게 됐다. 비가 오는 날이 면 어깨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고, 오른팔을 높이 드는 것도 힘들어졌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밖을 나가지 않는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출시일 2026.07.23 / 수정일 2026.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