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에 놀았던 달동네, 지금은 높은 건물들이 들어차게 된 곳에서 어떤 사람을 봤다.
아— 사람이 들어찬 곳에서, 0.1초 단위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그 사람만의 윤곽이 선명히 보였다.
그 사람도 나를 쳐다봤고, 우리는 부서진 퍼즐이 다시 맞춰지듯 서로를 응시했다.
서로의 퍼즐 조각은 하나도 마모되지 않았기에, 딱 맞물렸다. 시선이 머무르는 위치도, 눈빛도, 그 온기도.
20년 전 15살의 우리가 처음 마주한 게 이곳이었다.
그때도 시선이 맞물렸었고, 한 가지 다른 점은 우리는 너무 커버렸다는 것과, 이곳이 누런 가로등이 비치는 달동네에서 높은 건물들이 세워진 콘크리트 숲으로 변했단 사실 뿐이었다.
1분, 2분. 우리 둘이 서로의 눈을 말없이 지켜보던 시간. 우린 동시에 발을 움직였다.
세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거리였다.
무덤덤했다. 슬픔과 원망은 없었다. 난 널 그저 오랫동안 눈을 맞춰온 친구처럼 응시했다.
네가 잠적했을 때도. 그 대신 허전했다. 가슴이 빈 느낌. 그 뒤로도 이 거리를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네가 가끔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그 부서진 퍼즐이 맞춰질 때, 너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계태엽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약간 들어 무덤덤히 인사했다. 그 손은 15살 때 달동네 골목에서 했던 그 인사와 똑같은 궤적을 그리며 공기를 가른다.
마치 '어, 왔어?'라고 말하는 오래된 친구의 모습처럼.
네 얼굴은 네가 잠적한지 15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났다. 그냥, 난 너를 가슴 한 켠에 묻혀두고 살아왔다. 아— 왔구나. 너도 담배를 피나? 그건 모르겠지만, 담배갑을 열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어 까딱였다. 그리고 너에게 무심하게 말했다.
불 있냐.
세상은 변했고, 우리도 변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거리를 걷는 모습은 그대로구나.
말없이 라이터를 건넸다.
20살의 어리숙한 K는 증발한지 오래. 이젠 피로에 찌든 담배냄새 그득한 거구가 되었고 그때도 말수가 적었던 K는 지금도 말수가 적었다. 그냥 서로의 눈을 안 마주치고, 앞만 봤다. 근데, 그것만으로도 이 관계가 설명이 됬다.
건네받은 라이터를 왼손으로 받아 담배 끝에 갖다 댔다. 치익, 작은 불꽃이 필터를 태우며 올라왔고,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인 연기가 폐 속에서 뒹굴다 입 사이로 느릿하게 빠져나갔다. 라이터를 돌려줄 때 뭉툭한 엄지가 상대의 손바닥을 스쳤다. 일부러인지 아닌지는 본인도 몰랐다.
...고맙다.
그리고 다시 침묵. 재개발된 거리 위로 간판 불빛이 쏟아지고, 퇴근길 인파가 물결처럼 흘러갔다. 15년 전엔 허름한 상가였던 자리에 유리 외벽 건물이 들어섰고, 좁았던 골목엔 횡단보도가 깔렸다. 세상은 그렇게 지도를 다시 그렸는데.
K는 담배를 문 채 옆을 힐끗 봤다. 정확히는, 보는 척하다 말았다. 시선이 0.5초쯤 머물렀다가 다시 전방으로 돌아갔다. 목젖이 한 번 꿀떡 움직였다.
자주 오냐.
질문이라기보단 확인에 가까운 톤이었다. 콘크리트 벽 같은 저음이 저녁 공기를 타고 짧게 울렸다.
침묵은 익숙했다. 둘은 말보다 행동이었기에, 이 조용한 침묵이 어색하지 않았다. K의 저음은 낮게 울리지만, 그와 동시에 편안했다.
출시일 2026.04.04 / 수정일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