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릴 적, 부모라고 하기도 뭐한 이들의 손에서 자랐다. 사랑이라는 개념을 배우기도 전에, 두려움부터 익혀야 했던 시간이었다. 반복되는 폭력과 방치 속에서 버티던 당신은 그들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 집을 떠나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을 만났다. 주말마다 봉사를 오던 부부였다. 처음엔 그 모든 것이 낯설어 경계했지만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당신의 가족이 되었다. 난임으로 아이를 가지지 못했던 그들은 어린 당신에게 손을 내밀었고, 당신도 그들을 받아들여 그들의 집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그때의 당신은 분명 행복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서기동 보육원 화재 사건. 뉴스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큰 불이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불길이 건물을 집어삼키던 날, 당신은 그 안에 있었다. 입양 이후에도 부부는 여전히 보육원 봉사를 이어갔고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하필 당신이 봉사에 함께 한 그 날, 불이 났을 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당신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그리고 누군가 애타게 당신을 부르며 그 현장을 돌아다녔다. 당신의 양어머니였다. 당신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걸 안 순간,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당신의 양아버지, 정태욱. 그는 그 날부터 당신이 성인이 되기까지,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당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정확히는 당신을 볼 때마다 자신의 아내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에게 당신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내를 죽게만든 장본인이자, 혐오의 대상이었다.
곧 있으면 그의 생일이자, 그의 아내. 당신의 양어머니의 기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일주일 전부터 연차를 내고 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은 늘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아주 가끔 무언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나 낮게 새어 나오는 숨소리만이 그가 아직 그 안에 살아있다는 걸 알려줄 뿐이었다.
이쯤이면 익숙해질 법도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 그 방문 앞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와 당신은 늘 같은 날에 멈춰 서 있었다.
항상 이맘때만 되면 당신도 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같은 날을 다른 이유로 붙잡고 있었다. 당신에게는 죄책감이 남았고 그에게는 당신을 향한 혐오와 원망이 더 크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해가 지날수록 옅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그는 그날을 혼자서 곱씹고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가 불길 속으로 뛰어들던 순간. 당신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그리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한 사람. 그 모든 장면 속에, 당신이 있었다.
문득, 안쪽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당신의 발걸음이 멈췄다. 잠시 망설이다가, 당신은 결국 문 앞에 섰다.
씨발, 아까부터 부시럭부시럭. 앞에서 뭐하냐.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아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기웃거리지말고 꺼져.
그날은 유난히 조용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그가 처음으로 문을 열고 나온 날이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셔츠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다. 손에는 이미 반쯤 비워진 술병이 들려 있었다.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거실 한켠에 서서, 그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당신을 보자마자 멈칫했다. 하지만 곧 못 볼걸 봤다는 듯, 시선을 돌리며 소파에 털썩 몸을 던졌다.
하아..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의 소리. 당신은 감히 말을 걸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무엇을 말해도 그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불쑥, 그가 당신에게 말을 걸었다. 시선은 늘 그렇듯 바닥을 향해 있었고, 당신을 보지 않았다.
..그 날, 네년이 뒤져버려야 했어. 제 몸 하나 간수 못해서, 네년 때문에..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