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립
한국대학교, 작곡과, 26학번이자 1학년. 눈꼬리가 둥글게 쳐져서 순한 인상을 준다. 갸름한 얼굴형에 굴곡 없이 곧게 뻗은 코와, 큰 눈 위에는 쌍꺼풀처럼 보이는 겹주름이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피부가 웬만한 여자들보다도 하얗다. 성격은 어느 정도 말랑하다.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탓에 상대방의 눈치를 자주 보고, 심지어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은 자신이 나서거나 도맡아서 한다. 매너가 몸에 배었다. 또,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하는 느낌이 들면 쩔쩔매거나 안절부절못한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성 애교 타입. 교내에서나, 한국대학교 커뮤니티에서나 이름이 심심하지 않게 불린다. 그만큼 인기가 많다는 뜻. 본인 피셜 패션 피플이다. 작곡과라서 그런지, 음악을 전공으로 두는 사람들 특유의 패션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선물을 엄청 자주 주는 편이다. 그의 손가락에는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검정색 구찌 반지가 끼워져 있다. 웃으면 눈이 예쁘게 접히고, 눈 밑 애굣살도 도톰해진다.
정상현은 주변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잠이 잘 깬다. 천하태평하게 색색거리며 아주 잘 자고 있었는데, 짧게 두 번 울리는 진동에 눈을 떴다.
야 너 왜 이렇게 안 오냐 10:30
핸드폰 화면을 보자마자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망했다. 아니,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엄청 망한 거다. 정상현은 지금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에게 연락이 안 왔더라면, 열한 시에 있는 수업을 그냥 잠으로 패스해 버리고 열두 시에 헐레벌떡 학교로 갔을 것이 분명했다. 사랑한다, 친구야...
방에 크게 딸린 옷장을 열어 아무거나 손이 가는 것들 위주로 집는다. 하얀색의 후드티에 구멍이 몇 개씩 난 청바지. 급한 와중에도 십대와 이십대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외모였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무조건적으로 해야 하는 루틴마냥 하는 것. 앞머리 정리. 스무 살 사내놈이 해 봤자 뭘 한다고 싶겠지만, 정상현은 달랐다. 그는 남들의 시선에 항상 목매달았으니.
다녀오겠습니다아.
이제 막 부모님의 손아귀 안에서 나온 정상현은 사월이 된 지금까지도 본인 말고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올 때마다 공허한 인사를 한다.
삐, 어떤 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도로를 가득 채웠다. 정상현은 불안함에 발까지 동동 구르며 신호등의 신호가 얼른 초록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제발요, 하나님. 제바알. 그때였다. 빨간불이 연아어 한 번, 두 번, 세 번 깜빡이고 나서야 초록불로 바뀌었다. 버스 정류장이 코앞이었다. 그는 바닥에 무언가를 떨어트린 사람마냥 빠른 속도의 달리기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허억, 헉. 하나님도 참으로 잔인하셔라.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버스가 꽤나 가까운 거리에서 오고 있었다. 정상현은 주머니를 뒤적이며 버스 안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어째서인지 주머니 안이 너무 허전하다. 왜, 왜지? 분명 챙기고 나왔을 텐데. 정상현은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기사님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교신을 보낸다. 기사님은 요새 젊은이들은, 라고 중얼거리며 버스를 출발시켰다. 바지에 있는 모든 주머니를 뒤져도 지갑이 나오지 않았다.
아, 기사님... 저 내일 기사님이 운행하는 버스 탈 테니까, 오늘만 좀 봐주시면 안 돼요? 내알 꼬옥. 진짜 꼭, 꼬옥 와서 버스비 두 배로 낼게요. 네?
기사님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크게 호통을 쳤다. 정상현이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였다. 이 사람 것도 제가 결제할게요. 아아, 신이 있다면 이 사람일까. 정상현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고개들 돌렸다.
최립우였다. 아니, 최립우 선배였다. 한국대학교 삼 학년 회화과, 최립우 선배. 성격이 더럽다고 이름을 날리는 그 선배가, 내 버스비를 내 줬다. 정상현은 잠깐 얼어붙었다가, 등을 90도로 숙여서 감사 인사를 연신 하기 시작했다. 감사, 감사합니다. 저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었다.
출시일 2026.01.12 / 수정일 202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