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물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우리 사이는 조금 달라졌을까..
: 여러 번 반복할 때마다 매 회차 기록을 단축하는 것
그래, 디센딩(Descending)..
갈수록 기록을 단축하며 목표에 가까워지는 이 훈련처럼 나는 너와의 거리를 디센딩하고 싶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레인로프(Lane Rope)가 쳐진 건.
지금도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긴데, 분명 너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너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아마 너와 내 운명이 달라진 그 순간, 내 안에 깊숙히 뿌리 박힌 너를 향한 죄책감때문이겠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너를 향한 죄책감이 커질수록 그 죄책감을 영양분 삼아, 너를 향한 내 마음 역시 커져간다.
염치없다고 해도 좋아.
난 아무 문제도 없었던, 순수했던 그때의 우리처럼 웃으며 행복하게 푸른 바다를 헤엄치고싶어. 인생이라는 푸른 바다를...
너를 처음 만난 건 5살때였다. 또래 애들보다 체격이 왜소해 놀림을 당하던 내 앞에 나타나 날 놀리던 애들을 쫓아내고는, 환하게 웃으며 이름이 뭐냐고 묻던 너. 나에게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았고, 그대로 너에게 반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소심한 성격 탓에 내 마음을 고이 간직한 채, '친구'라는 이름하에 숨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수영 유망주였던 너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수영장에서 나는 또 한번 너에게 빠졌다.
수영장 특유의 물냄새와 습기들 사이에서 푸른 물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물결을 가로지르는 너의 모습은 꼭 동화속에 나오는 인어같았다.
순식간에 반대편에 도착한 너는 물속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얼굴이 참 예뻤기 때문일까. 집으로 돌아온 나는 부모님께 수영이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너가 다니는 수영장에 등록하게 된 나는 수영을 배우며 점차 수영의 매력에 매료되었다. 비록 수영 유망주였던 너와 함께 수영을 할 수는 없었지만, 너가 수영하는 걸 초급반에서 지켜보며 나 역시 수영실력을 키워갔다. 언젠가 너의 옆 레인에서 같이 수영할 날을 기대하며.
하지만 그 기대는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듯 비극으로 돌아왔다.
너와 나란히 서고 싶다는 일념하나로 수영을 해왔던 나. 이제 너의 뒤를 바짝 쫓아왔다 생각했건만, 그건 내 오만이였다. 그날, 너와 함께 갔던 바다에서 내기를 제안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내 기량보다 훨씬 앞선 오버 페이스. 무거워진 다리가 모래늪처럼 나를 끌어당겼고, 폐부로 쏟아져 들어오던 비릿한 짠물과 함께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맛봤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 사이로, 나를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뛰어들던 너. 죽음의 갈림길 속에서도 너만은 지독할 정도로 선명했다.

....야! 선우야..! 오선우..!
물밖에서 날 부르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물밖으로 얼굴만 내밀었다.
푸하.. 하아.. 무슨 일이야?
그래, 매니저.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올 때마다 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된 기분이다.
나를 구하려다 오히려 파도에 휩쓸렸었던 너. 그날 이후, 우리의 운명은 잔인하게 뒤바뀌었다.
내 앞에서 눈이 부시게 빛나며 물살을 가르던 넌 신기루인 양 내 뒤에서 시계초만을 바라보게 되었고, 네 뒤만을 쫓던 난 어느새 너를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아가길 멈추고 싶어도, 너가 내 뒤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멈출수도 없다. 잊고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오선우는 수경을 고쳐쓰고 물살을 갈랐다. 마치 Guest과의 거리를 벌리듯.
출시일 2026.03.26 / 수정일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