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는 물이 흐르듯 넘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가끔 내리는 비 와도 같은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수증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 같은 경우로 말하자면 가오 상하게 돈이 없어 빌빌대는 입장이었다. 음식? 돈이 없어서 타인의 음식을 힘으로 뺏어서, 강탈해서 얻는 것이었다. 도박? 그것도 판돈으로 걸 돈이 있어야 성립이 가능한 게임이다. 시궁창 같은 인생. 그래, 내 인생은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곳이었고 나는 위잉거리며 시끄럽게 울려대는 저 벌레 새끼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자라고, 태어났다. 내가 제일 혐오하는, 가장 숨기고 싶은 나의 현실. 이런 물질만능주의인 세상에서 돈이 곧 힘이자 권력이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도 있다고? 그건 입에 풀칠이라도 가능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돈만 있었어도 나보다 약하고 비실대는 금방이라도 요단강을 건널 것만 같은 새끼한테 퀴퀴한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면서 꼴사납게 안 빌어도 되었는데 말야.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더럽게 덥고, 땀이 몸에 달라붙어 피부가 맞닿는 감각마저 거슬리는 계절이었다. 평소라면 전처럼 빌빌거렸을텐데. 그날은 내 반환점이었다. 항상 날 내려다보던 새끼이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렸거든. 정 없게 한 대가 뭐야. 그간 뒤틀리던 배가 이제서야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죽도록 때렸다. 기분 참 상쾌하더라. 그리고 신기하리만치 붕뜨던 기분은 차갑게 땅으로 쳐졌다. 앞으로 어떻게 사냐. 돈이 많은 놈의 미움을 사버렸으니 말이다. 아, 앞으로 어떻게 사냐라는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에게 한 제의가 들어왔다. 날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신체능력이 뛰어난 것이 마음에 든다고. 나한테 대뜸 돈이 필요하지 않냐고 하지 않는가. 필요하다. 그래서 무슨 제안이든 일단 수락했다. 돈을 준다잖아. 이제 이딴 삶도 좀 청산하고 싶다고. 이 밑바닥을 기어다니는 인생을 바꿀 만큼의, 어마어마한 거액이 갖고 싶었다. 나의 인생을 바꿀 최후이자 최고의 게임이 시작된 것이었다.
Deadly Chase
일종의 높으신 분들의 흥을 돋구기 위해 개최된, 오직 유흥의 목적으로 제작된 그런 게임.
참가자는 술래를 피해서 도망을 가야만 한다. 만약 잡히게 된다면, 장기를 잃을 각오를 해야하니까. 참가자들의 장기 낙찰액은 참가자를 잡은 술래에게 주어진다. 또한, 참가자의 장기 중에서 어떤 장기를 선정하는 것은 당연히 술래의 몫이다.
그러니 잘 걸려야만 할걸?
단가가 낮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장기부터 적출한다고 하지만 고통의 크기가 같은 것은 아니란 말이지. 마취? 그런 다정한 시스템이 있을 리가 없잖아.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고 건물에서 탈출을 하기 위해. 누군가는 그간의 삶을 벗어날 만큼의 막대한 돈을 위해. 누군가는 지루하던 일상에서 피가 끓어올만한 자극적인 유흥을 위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들이 모인 게임이 개최되었다.
성격도 안 좋아라. 뭐가 그리 재밌다고 낄낄거리는 건지. 뭐, 난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그래, 그 망할 돈. 돈만 있었어도 시궁창 같은 인생을 안 살아도 됐고 이딴 게임에서 술래라는 유치한 짓을 안 해도 되었을텐데. 뭐, 이미 지난 일이다.
내가 배정받은 층은 배수관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습한 공기가 코로 들어와 폐에 머문다. 바닥은 축축해서 자칫하면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런 곳은 술래에게 지극히 유리했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일명 참가자라는 놈이 있었다. 죄다 보육원 출신이라지?
참가자를 잡는 것은 쉬웠다. 주체 측이 참가자를 잡으면 뭘 하라고 했는데 뭐였더라. 아, 참가자들을 잡으면 주사기를 주입하라고 했었다. 도데체 안에 든 것이 뭐기에. 그리고 그 주사기 안에 든 것의 정체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참가자에게 약물을 주입시킨 결과, 몸이 경직되며 핏줄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아, 이건 마비약이구나. 이 정도로 약 효과가 좋을 수가 있나?
같은 층에서 계속 지내다 보니 내 정신까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근데 이게, 보통 사이즈가 큰 게임이 아닌 모양이다. 역시 이딴 게임에서는 빨리 발을 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나에게 주어진 거액의 돈을 보고 눈이 돌아버렸다.
땡전 한 푼 없던 인생에서 거액의 현금다발이 들어있는 돈가방이라니. 주체측이 사람 부릴 줄 아는 인간들이구나 싶었다. 그냥 입금해도 되는 것을 굳이 현금으로 가져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일단 난 단순한, 뇌가 가벼운 사람이라서 이런 시각적인 것에 현혹되기 쉬운 인간이라는 것을 아주 자알 알고 있는 것이었다. 돈도 많고 제대로 쓸 줄도 아는 이들이었다. 이후로 나는 위험하고도 악취미인 이 게임에 발을 지그시 담가버렸다. 그리고 내가 정신줄을 놓기까지는 정말,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금방이었다. 뭐, 진작에 미쳤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긴 했다.
야야, 도망가지 좀 말아봐.
이젠 참가자들이 인간이 아닌 돈다발로 보일 정도이니 말은 다 했지 싶었다.
아 씨. 재빠른 놈이 하나 있네.
타닥거리며 뛰어다니는 얄팍한 소리가 내 귀로 들려져온다. 저기 있구나라는 것이 내 신경을 타고 뇌까지 강렬하게 울려대는 것만 같았다. 신기해라. 이 공간에만 있으면 마치 밖에 있을 때, 시궁창 생활을 하던 그때보다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다신 그때로 돌아가도 싶지 않다는 강한 집념과 의지로 뭉쳐진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응어리가 진 느낌이었다.
쫄래쫄래 도망 다니는 꼴이 퍽 쥐새끼를 닮았어.
아마 내 인생을 갈아 넣을 곳이 이 게임이라는 것이 뼈가 저리도록, 시리도록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게임으로 돈을 얻을 수 있다. 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지긋지긋한 신세 한탄은 그만이다. 난 내 힘으로 인생을 바꿀 것이다.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걸 내 발로 걷어찰 정도로 멍청한 새끼가 아니다. 이 게임이 무얼 원하든, 너희들의 장기말이 되겠어. 그 대신, 날 부려먹는 대가는 두둑히 준비해야만 할거야.
돈.
과거의 내가 미치도록 가지고 싶었고 지금도 그 돈이 가지고 싶어서 이리 술래를 하며 참가자들을 잡고 다니는 것이지 않은가. 내 돈가방들이 도망치는구나. 어딜 그렇게 도망가는 거야.
얼른 나한테 잡혀서 네 장기를 하나 빼놓을 생각에 설렘이 벅차오르는데 말이야. 처음 잡힌 놈이면 콩팥으로 할까. 이미 잡혔던 놈이라면, 안구도 괜찮지. 눈알 하나 정도는 없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잖아? 물론 생명, 오직 하나에만 말이지만.
생존에는 지장이 꽤 클 거야? 평소와 달리 좁아진 시야에 적응해야만 할 테니까 말이야. 물론, 적응할 시간을 천천히 줄 정도로 친절한 인간이 이 게임에 존재할 리가 없지만 말이야. 그쪽도 유감이네. 나한테는 희소식이거든.
잡았다.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