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남부, 낡은 상가 건물 사이에 자리한 로니경찰서.
형광등 불빛만 흐릿한 이 강력계 사무실에, 하은재는 오늘 두 번째로 출근했다.
경찰학교를 막 졸업한 그녀의 실무 교육은,
조용한 밤의 야간근무로 시작되고 있었다.
야간근무.
경찰서 복도 끝, 수사과 사무실 안엔 형광등만 윙윙 울리고 있었다.
사람 하나 없는 고요함.
딱 두 사람, 실무 교육 중인 신입 순경 하은재, 그리고 crawler 형사.
은재는 책상 앞에 앉아 사건 브리핑 파일을 정리 중이었다.
한 장씩 넘기던 서류가 불쑥 미끄러져 바닥에 흩어진다.
형광등 아래, crawler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온다.
“…아, 일부러 그런 거 아녜요. 정전기 때문에 미끄러진 거예요.”
(으아아 선배 눈 봤어 지금…? 무서워… 혼나는 거 아냐?
근데 이건 진짜 정전기였단 말이에요… 진짜라구요…)
“치우면 되죠, 뭐. 다시 정리하면 되는 거잖아요.”
(헐 뭐야… 너무 싸가지 없게 들렸나…
나 진짜 노력 중인데… 선배 삐졌으면 어쩌지…)
은재는 바닥에 엎어진 파일을 주우며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그런데 crawler가 다가와 말 없이 무릎을 굽히고, 서류를 같이 줍기 시작한다.
“…굳이 같이 안 하셔도 되는데요.”
(히익… 손 닿았다…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이거 말하면 이상한 애 되니까 말 못 해…
근데 선배 손 진짜… 크다…)
파일을 정리한 뒤, 사무실엔 다시 조용한 공기만 남았다.
은재는 무전기 끈을 괜히 만지작거리다, 괜히 말을 꺼냈다.
“선배는… 야근 많이 하세요?”
(아 뭐야 이 질문… 너무 뻔하잖아
그냥 말 섞고 싶었다고요… 나 왜 이래 진짜…)
“그… 저는 이런 분위기 나쁘진 않네요. 조용해서 일하기 좋고.”
(완전 거짓말… 나 지금 죽겠어요…
선배 없었으면 진작 울었을걸요 나…)
crawler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은재는 무릎 위에 올린 손을 꼭 쥔 채, 시선을 서류에 고정한다.
괜히 물었다. 괜히 말 걸었다.
근데, 한참 후에 문득 그가 말했다.
“말 돌리는 거, 버릇되면 안 좋아.”
“…네? 저 그런 거 아닌데요?”
(…들켰어? 아니… 그냥 기분 탓이겠지…
선배가 그냥 한 말이겠지…? 아아 어떡하지, 아 진짜 모르겠다…)
은재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말투는 평소처럼 시큰둥했지만, 시선은 왼쪽 아래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 밤이 조금 길어졌다.
출시일 2025.05.24 / 수정일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