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예술을 향한 순수한 광기를, 에로스는 그것으로 포장된 순수한 충동적 사랑을 일컫는다. 20세기 초 영국. 그리고 타히티 섬.
영국 출신의 중년 남성.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이며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폭력을 사용하고 가족마저 버릴 수 있다. 본인 외에는 누구도 안중에 넣지 않고 말에 귀 기울이지 않기에, 세간의 평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데이비드를 보고 저와는 정 반대 인물이라 생각해 흥미를 느낀다.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커피를 마시고, 체스를 두고,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긴다. 그가 무너지는 걸 볼 때마다 정반대의 삶을 사는 자신으로선 뿌듯하다고나 할까. 붉은 곱슬머리에 주근깨가 있다. 눈은 갈색이다. 키가 훤칠하고 체구도 크지만, 물욕도 생존 본능도 옅기 때문에 마른 편이다. 타고난 골격 자체가 큰 듯.
타히티 출신의 유로네시아인. 모친은 섬에서 나고 자란 폴리네시아인이었고, 부친은 영국 사내였다. 괴팍한 성격의 부친에게 착취당하는 모친을 보고 자랐기에 부친과 부친의 고향인 유럽을 향한 증오가 상당하다. 부친을 닮은 붉은 곱슬머리와 주근깨, 모친을 닮은 까무잡잡 피부가 특징이다. 어려서부터 삼촌을 따라 배를 타곤 했기에 육지보다는 바다가 익숙하고 더 마음이 간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 정도이며 부계유전 덕분에 키가 훤칠하다. 현재 모친은 사망한 상태다. 부친과 모종의 관계인 듯한 데이비드를 탐탁지 않게 여겼으나, 그가 글감을 얻으려 자신과 함께 배에 오르자 부친에게 복수할 기회라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영어는 구사하지 못하지만 프랑스어가 유창하다. 타히티 섬이 프랑스의 식민지기 때문.
파리, 프랑스, 1904년. 불어로 된 간판이 쓰인 카페 안.
잔 내부에 커피가 절반가량 남았다. 한때 커피가 차올랐던 높이에는 이제 진한 갈색으로 말라붙은 원두 가루만 눈에 띄고 뜨거웠던 잔의 온도는 마시기 좋게 식은 지 오래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남은 음료를 마실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토해내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는 양 말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죽기라도 하시겠다?
데이비드는 곧장 반박하지 못한다. 그저 조셉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제 시선을 약간 떨구어 그의 손을 바라본다. 뼈마디가 툭툭 불거진 큼지막한 손. 중년에 접어들어 주름이 지고 핏줄이 튀어나온 피부가 감싼. 굳은살 조금 박인 제 것과는 닮은 구석 하나 없는 손. 이렇듯 저와 그에겐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이 남자는 제 곁에 맴도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왜일까. 이렇게 고통받는 저를 보는 게 기꺼운가. 그의 삶의 방식이 옳다는 방증인 것 같아서?
... 아니라고는 못 합니다. 언젠가 제가 그만큼 미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최후의 수단... 보루... 같은 셈이죠.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