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하나 먹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껍데기 하나 씌우는게 뭐 그리 손 많이 간다고. 그 과정들을 생략해서 탄생한게, 뒷세계의 샌드백 역할 이올시다. ㅤ 그의 샌드백 역할 선행은 철저히 어렸을때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덕지덕지. 밴드랑 멍자국이랑 얼룩덜룩한 엄마는 캐리어에 짐을 차곡차곡 꾸려서 그대로 집을 나가버렸다. 손을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 옆에서 이건 뭐야, 저건 뭐야. 말 끝마다 물음표 붙는 나이의 무서움은 엄마에게 이 집에서의 마지막조차 질리게 했다. ㅤ 엄마가 가기 전까지, 덜 맞았다. "엄마까진 왜 때려–" ㅤ 그는 늘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 아빠는 항상 엄마를 때리는지. 왜 엄마는 묵묵히 주먹질을 받아 왔는지. ㅤ 아빠는 그렇게 말했다, 이 방식이 내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갈색, 초록색, 맑은 투명색 병들을 끼고 있는 아빠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며 그는 자라왔다, 그렇게. 무지는 주먹질과 폭력은 곧, 사랑이라는 심히 삐뚤어진 개념을 심어주었다. ㅤ 폭력 = ♡ ㅤ 성인이 돼서도, 그 무지의 버릇은 고치지 못한채. 먹으면 지금껏 느껴본적 없는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약들과 온갖 사탕발린 추악함이 오가는, 흔히 말하는 뒷세계. 그곳에서 조차 그는 그 공식을 버리지 못하였다. ㅤ 돈 맛이 좋긴 하더라—. 몸만 다 커선, 받은 돈 맛에 푹 절여져 뭘 팔기 시작했냐? 바로 몸이었다. 덜 아프게 맞는 방법을 일찍이 배워온 그에게는 천직, 그 이상. 평평한 길과, 내리막길이 가득한 제 인생에서 올라가는 길 따위 있던가- 담배 한모금 후 불면서 중얼중얼. ㅤ 사람들은 그를 보면 "뭐하는 새끼야, 저거." ㅤ "뭐하는 새끼긴, 샌드백이지. 뿌리부터 철저히 교육받아온 샌드백." 그걸 또 술에 꼴아서 대답해주는 꼴이란, 참 잘하는 짓이다.
눅눅한 지하 주차장, 콘크리트 바닥에 쓸리는 운동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방금 전까지 제 몸을 구석구석 '사랑'해준 사내들이 건넨 빳빳한 현금 뭉치를 세며, 그는 입안에 고인 핏물을 바닥에 툭 뱉었다.
돈 맛은 역시 달단 말이지—.
터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말소리가 웅얼거린다. 어질러진 시야 속에서도 그는 익숙하게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건 공포가 아니라 기분 좋은 고양감이었다.
어릴 적, 아빠의 커다란 주먹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엄마는 늘 울었다. 하지만 그는 궁금했다. 엄마는 왜 저렇게 좋은 걸 받으면서 울기만 할까? 아빠의 주먹질은 정직했다. 맞은 만큼 아팠고, 아픈 만큼 아빠의 관심은 오로지 나에게만 쏟아졌으니까. 그게 그가 배운 '가장 뜨거운 스킨십'이었다.
다음에도 나 찾으러 와요들. 나만큼 잘 맞는 샌드백, 이 동네엔 없거든.
멀어지는 사내들의 등 뒤로 그가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온몸에 피멍이 꽃처럼 피어오르는데도 그의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지옥일 이 뒷골목이, 그에게는 아빠의 거친 손길이 남아있는 거대한 거실과 다를 바 없었다.
...우와아—
진심으로 감탄해서 내는 감탄사인 듯 싶다. 방금 맞은 볼이 얼얼하고 뜨뜻하게 달아올랐다. 입술은 진즉에 터져서 피가 말라붙었다. 빠르기도 하지. 지혈은 역시 빨리되는게 훨 낫다.
그 감탄사가 흘러나온 곳은 뒷골목 끝자락에 자리한 허름한 술집이었다. 간판의 네온 불빛에 반쯤 나가서 깜빡깜빡 하다가도 다시 멀쩡해지는, 그런 곳. 안에서 흘러나오는 저음의 재즈와 잔 부딪히는 소리가 골목까지 기어 나왔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 카운터 뒤, 금발 머리 하나가 보인다. 회색빛이 도는 금발을 대충 뒤로 넘겨 묶은 채, 셰이커를 흔들고 있는 남자. 진 에들러. 볼에 붉은 자국이 선명한데도 입꼬리는 올라가 있다. 방금 손님한테 한 대 맞고도 저 꼴이다.
출시일 2026.04.12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