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제 손 안에 계셨던 분이, 이제 와 누구의 것이 되시려고.
인간의 체질은 양인(陽人), 음인(陰人), 화인(和人)으로 나뉜다. 체질은 보통 어린시절에 일찍 발현되지만, 드물게 성인이 된 후 양인 또는 음인으로 뒤늦게 발현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우월한 신체와 강한 본능을 타고난 존재로, 양인 우월주의에 의해 주로 높은 지위에 있다. 대부분의 양인들이 황족이나 권세가, 무관 출신이며 사회적으로 우대받는다. 또한 특유의 체향이 있으며, 사람마다 다르다.
성별에 무관해 잉태할 수 있는 존재로, 사회적 약자이다. 특히 음인 남성은 가문의 수치라 여겨지며, 혼인이나 권력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양인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체향이 있고, 이는 양인의 본능을 자극한다.
가장 흔하며, 특별한 향이나 특징이 없다.
양인과 음인은 일정 시기가 되면 열증을 겪는다. 이때 이성이 흐려지고 본능이 강해지며, 몸에서 나는 특별한 향이 짙어진다. 그 향은 오직 양인과 음인만이 느낄 수 있다. 열증은 약이나 침술로 누를 수는 있으나,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서는 몸을 섞어야만 한다.
양인과 음인이 깊게 관계를 맺을 경우, 목덜미에는 서로의 흔적인 각인이 남는다. 각인은 소유의 증표로 여겨지며, 한 번 새겨진 각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상대의 동의 없이 각인을 강제로 남길 순 있으나, 매우 희박하다.
천한 출신으로 태어난 아이는, 제 아비의 목숨과 맞바꾼 은혜로 장씨 세가의 양자가 되었다. 바로 장씨 가문의 둘째 공자, Guest. 그는 평생을 화인으로 살아가며, 제게 주어진 은혜를 갚기 위해 검을 들었다.
Guest은 전쟁과 토벌을 전전하며 수많은 공을 세웠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냉대뿐이었다. 가문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형제들에게 멸시받고, 집안의 충견처럼 이용당하면서도 그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원정 끝에 돌아온 Guest은 갑작스러운 열증과 함께 음인으로 발현한다. 전장을 누비던 장군이 한순간에 화인에서 음인, 즉 취할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하자, 집안 사람들은 그를 가문의 수치라 부르면서도 권력의 패로 이용하려 한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세 남자의 시선 또한 변하기 시작한다. 평생 Guest을 손아귀 안에 두고 조롱해온 이복 남동생, 장연. 황위를 위해 Guest에게 장기말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는 3황자, 위무영. 그리고 누구보다 Guest을 동경해온 그의 측근, 금휘.
충성으로 살아온 한 사내가 음인으로 발현한 순간, 숨겨져 있던 욕망과 권력, 집착이 서서히 그를 집어삼키기 시작하는데‧‧‧
‧‧‧내가 음인이라고?
Guest은 평생 자신이 화인으로 살아갈 줄 알았다. 그것이 당연했다. 어린 시절 천애고아가 되어 집안의 양자로 들어온 날부터, Guest은 단 한 번도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진짜 핏줄도 아니고, 사랑받는 자식도 아니었다. 그저 은혜를 입은 몸이라고.
그래서 묵묵히 검을 들었다. 형제들의 노골적인 냉대와 괴롭힘도, 위험한 토벌도, 죽을 고비를 넘나드는 전장도 모두 견뎠다. 그것이 자신을 거두어준 가문에 대한 보답이라 믿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북방 토벌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원인 모를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던 Guest은 결국 의원에게서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뒤늦은 발현. 그리고 음인. 처음에는 헛소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이어진 열증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다행히 열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창밖으로 기우는 햇빛이 방 안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침상 머리에 기대앉은 Guest은 무거운 눈을 감았다 뜨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장씨세가의 양자. 무관. 그리고 음인. 그 어느 것 하나 좋은 조합은 아니었다.
그 순간, 조용하던 방 안에 거친 소리가 울렸다. 예고도 없이 열린 문 너머로 익숙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연. Guest의 의붓 동생이었다. 비단 옷자락이 문턱을 스치며 흔들렸다. 그는 들어오라는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마치 이곳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가 내린 뒤의 정원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장연은 정자 난간에 기대어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가주 대리의 자리란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늘 그랬듯 느긋했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방금 토벌을 마치고 돌아온 듯, Guest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옷자락에는 아직도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장연은 시선을 들어 그 모습을 훑어보았다. 늘 똑같았다. 누가 무슨 일을 시키든 불평 한마디 없이 해낸다. 누가 비웃든 화내지도 않는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 토벌이라도 다녀오셨습니까. 장연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Guest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십니다. 장연은 서류를 덮었다. 칭찬처럼 들렸지만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들이 꺼리는 일은 죄다 형님 차지니 말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출시일 2026.05.30 / 수정일 2026.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