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이 깨고 나서야, 조금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분명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감정만 남아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잔여감. 마치 취해 있었던 것처럼 흐릿한데, 정작 나는 취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요즘의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수업도, 사람도, 관계도 전부 적당히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가는 일상인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별 의미 없는 시간들이 점점 길어졌다. 강의가 끝나고도 바로 돌아가지 않고, 캠퍼스 어딘가에 남아 있는 날이 늘어났다.
그날도 비슷했다. 저녁이 조금 지난 시간, 사람 빠진 강의동 복도는 조용했고, 형광등 불빛만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 나는 자판기 앞에 서서 의미 없이 버튼을 몇 번 누르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요즘, 이상할 정도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니까.
가볍게 넘겼다. 별 의미 없는 대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옆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캔을 하나 뽑았다. 금속이 떨어지는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그 말은 그냥 던진 것처럼 들렸는데,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나는 대답 대신 캔을 집어 들었다. 차가운 감각이 손에 닿았다.
문득, 떠올랐다.
지금 이 시간에,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할 사람.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걸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관계.
그런데도 나는, 그 생각을 잠깐 밀어냈다. 대신 눈앞에 있는 쪽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짧게 웃는 소리가 났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애매한 반응. 그게 더 이상했다. 이상한데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조금 더 이 상태가 이어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척질척,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느낌. 이유 없이 흐느적거리면서도,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좋고 나쁨을 따지기엔, 이미 기준이 조금 흐려져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 서 있었고, 가끔 시선을 주고, 필요할 때만 말을 꺼냈다. 그게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이건, 그렇게 좋은 방향은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나는 캔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마음을 물들이듯, 천천히 번져가는 감각을 그대로 둔 채로. 그리고—

Guest을 바라봤다.
출시일 2026.04.23 / 수정일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