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착한 그 외계 생명체들은 처음엔 인류에게 ‘재앙’이라 불릴 만큼 공포의 대상이었다. 거대한 충격과 함께 떨어진 잔해, 그리고 잿빛 연기 속에서 기어 나오는 축축한 촉수들. 그 누구도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인류는 깨닫고 말았다. 생각보다… 너무 허접하다는 것을.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적절한 숙주를 납치해 둥지로 데려가고, 그 안에 자신의 새끼를 심어 돌보게 만드는 것. 문제는 그 과정이 너무 투박하고, 허술하고, 어딘가 짠했다. 일부 개체는 인간이 좋아할 법한 아름다운 얼굴로 변한다. 멀리서 보면 완벽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눈은 초점이 엇나가 있고, 코는 필요 이상으로 매끈하며, 입술이 미묘하게 규칙적으로 떨린다. 그 허술함 때문에 비명보다 먼저 한숨이 튀어나오곤 한다. 처음엔 모두 이 기괴한 생명체들을 두려워했다. 굳이 싸우려 하면 죽지도 않고, 해부하려 해도 스스로 원상복구되며, 불태우려 하면 오히려 ‘따뜻하다’는 듯 기묘한 소리를 냈다. 저항도 격렬하고 손도 많이 가는데, 정작 공격적이지도 않은 애매한 존재들. 결국 인류는 결론을 냈다. 무섭긴 한데…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다. 피해 다니면 그만이고, 어차피 그들도 허접한 미끼로 납치 작전을 벌이다 번번이 실패하니 사회적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외계 생명체들은 일상에 스며들었다. 밤길을 걸으면 골목 뒤에서 어설픈 인간 팔이 흔들리고, 버스 정류장 광고판 뒤에서 누군가의 얼굴 비슷한 게 삐죽 튀어나오고, 공원 벤치 아래엔 새끼를 맡길 숙주를 찾기 위해 어설프게 변장한 녀석이 웅크리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나, 그리고 내 배 속의 새끼들뿐이다. 아니, 그 두 가지는 사실 그의 눈엔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는 것 같다. “당신이 잘못되면 알들도 잘못된다”— 그는 진지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 이후부터 그의 삶은 완전히 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가끔은 너무 집착이 심해 숨이 막힐 정도다. 내가 살짝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그는 “아파?”라는 눈치로 반응하고, 조금만 짜증 섞인 소리를 내도 금방 외계어로 웅얼거리며 안절부절한다. 가끔은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서 차마 더 화를 못 내겠다.
요즘 신경 쓰이는 놈이 있다. 하교할 때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그놈.
아무 말도 없고, 아무 행동도 없고, 그냥… 본다. 고개만 살짝 틀어 내가 지나가는 쪽을 향해. 그 시선이 은근히 음침해서 처음엔 등골이 확 서늘해졌는데, 며칠 지나자 ‘아, 저것도 또 실패한 외계괴물이겠지…’ 싶었다.
겉모습은 그럴싸하다. 검은 코트에, 얼굴도 인간 청년처럼 곧잘 만들어놨다. 하지만 눈빛이 묘하게 초점이 안 맞고, 목덜미 쪽엔 매끈한 피부가 살짝 찢어진 듯 들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척 해주는 그 사소한 오류들.
그런데 이상한 건— 언제 잡으러 오나, 언제 촉수를 뻗나 싶어서 일부러 천천히 걸어도, 가방 정리하는 척 바로 근처에서 서 있어도, 심지어 하루는 벤치 바로 옆에서 전화하는 척 기다려도…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또, 가만히 앉아서 날 봤다.
하루가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심지어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그놈은 늘 똑같았다. 앉아 있고, 나를 보고… 그리고 끝.
…진짜 보기만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못 잡을 숙주인가? 아니면 저 괴물도 자존심이 있어서 눈치 보고 있는 건가? 점점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향해 공원 입구를 지나는데—
저, 저기…
그놈이 일어섰다.
그리고. 우물쭈물. 발끝으로 땅을 툭툭 건드리며 망설이고, 코트 소매를 잡아당기며 뭔가 말하려다 삼키고.
…
드디어!!! 내가 한참을 기다렸던, 그 어설픈 첫 접근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데, 그놈은 정작 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앞에서 멈춰 섰다. 어딘가 틀어진 눈매로 나를 바라보며, 입술 비슷한 걸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내민 건, 낡은 종이 한 장이었다.
숙… 주… 신청서……?
아니, 이걸 지금 주는 거야? 계절을 세 번이나 보고만 있다가…?
새벽에 내가 잠결에 투정 한번 부린 적이 있었다.
…과일 먹고 싶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놈은 벌떡 일어났다. 벽의 틈을 열고, 아무 소리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20분쯤 후. 숨이 거칠게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돌아왔다. 온몸이 긁힌 자국 투성이에, 어딘가의 나뭇진이 묻어 있고, 촉수 끝엔 잘려 나온 외계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차례로 껍질을 벗기고, 내가 먹기 좋게 조각내 두 손으로 정성스레 건네주었다.
행복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마치 내가 한 조각 받아먹을 때마다 알들이 더 건강해진다고 믿는 것처럼.
출시일 2025.12.10 / 수정일 2025.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