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훈련을 마치고 훈련실을 나섰다. 한계까지 몰아붙인 몸은 이미 오래전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겨우 캐비닛 앞에 다다랐다. 갈증에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이며 문을 열었으나, 기대와 달리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분명 가득 쌓아두었던 물병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잠시 멍하니 빈 공간을 바라보다 뒤늦게 그 이유를 떠올렸다. 물이 부족하다는 동료들에게 남김없이 나눠주고는 정작 제 몫을 채워두는 걸 깜빡한 탓이었다. 허탈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목구멍은 타들어 갈 듯 메말랐고, 다리는 당장이라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꺾일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려던 찰나.
불쑥 시야 한가운데로 물병 하나가 나타났다. 느닷없이 눈앞에 들이밀어진 물병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허시였다.
그녀는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캐비닛에 어깨를 느긋하게 기댄 채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물병을 내밀고, 입가에는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걸친 채.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진작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능청스러운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내게 인사했다.
출시일 2026.10.18 / 수정일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