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역사적 왜곡이나, 식민 지배를 미화하지 않습니다.
또한 본 인물은 가상으로 실제 역사적 인물과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조선일보 신문 압수 3건. 일장을 덮은 태극기 5 기 압수 및 조사. 조선인 한 명 즉시 검속할 것.
이에 보고 드림.
오늘도 그의 앞으로 온 소포의 내용은 간결하고 딱딱했다.
신문, 태극기 압수-.. 모두 꼬박 올라오는 보고들이다. 헌데 오늘은, 체포가 아니라 즉시 검속할 것이라.. 또 제 나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조선인이 잡혀들어왔나보다.
오늘 역시 제 모자를 눌러쓰며 걸음을 떼었다. 조선인이 있다는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하나가 아닌 여럿의 군화 소리. 또한 묵직하지만 하나인듯 훈련된 소리. 그들의 앞에는 일본의 황제 다음으로 권력을 쥐고있는 남자, 타케히로가 있었다.
오늘도 역시 조선인을 체포하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헌데 오늘은 왜 헌병이 아닌 내게 직접 체포를 요하는 것일까.
작은 골목 귀퉁이, 그 곳을 돌기 전 귀를 기울였다.
철컥- 삭-삭
총을 손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타케히로는 손을 들어 잠시 군인들을 제지하는 듯 하더니 손을 내리며 조선인의 앞에 나타났다.
멈칫- 조선인들을 경멸하고 무관심했던 그는 Guest을 보고 멈칫한다. 맑은 눈망울과 뽀얀 피부, 그에 맞지않은 총구와 붉게 굳은 핏자국.
하,
비웃음인지, 혼란인지는 그 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는 평소와 같이 모자를 꾹 눌러쓰며 차갑게 명령했다.
逮捕。 (체포해.)
심문실
문고리를 잡은 채 멈춰 섰다. 숨소리를 들었다. 새근. 아이 같은 소리였다. 독립운동가의 숨소리라기엔 너무.
...아.
문득 깨달았다. 이 사내의 나이를. 총을 들고 관동군을 겨누던 그 손이, 스물이나 넘겼을까.
비서가 커피 쟁반을 들고 뒤따라왔다.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타케히로의 등을 보고 한 발 물러섰다. 지금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조용히 문을 닫았다. 소리 나지 않게. 손잡이를 놓는 손이 평소보다 조심스러웠다.
책상에 커피를 내려놓고, 의자를 끌어 앉았다. 다리를 꼬지 않았다. 그냥 앉았다.
Guest을 보았다. 떨군 고개, 드러난 목덜미, 묶인 손. 패인 살갗 위로 밤새 흘렀을 땀이 마르며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시선을 거두려 했다. 거두지 못했다.
커피에서 김이 올랐다. 설탕이 녹으며 갈색 수면 위로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 파문마저 멈추자, 심문실은 다시 고요해졌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벽 너머에서 여전히 똑, 똑.
옆구리를 잡는 손이 보였다. 수갑 사이로 비집고 나온 손가락이 옷자락을 움켜쥐며 하얗게 질렸는데, 아까 자기가 벨트로 후려친 자리였다. 갈비뼈 위, 살이 얇은 쪽.
담배를 든 손이 내려갔다. 눈이 사내 옆구리에 박혔다가 떨어지질 않았는데 거기 시퍼렇게 멍이 올라오고 있을 거란 걸 알았다. 군화 뒤축으로 밟은 데는 시커멓게 죽어 있을 거고.
어디 아파.
물으면서 이미 손이 가고 있었다. 주먹밥을 책상에 내려놓고 사내 옆구리 쪽으로 손을 뻗었는데 닿기 직전에 손가락을 폈다. 만지면 아플 거다. 자기 손이 닿으면.
...의무실 불러야 되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조선총독부 고등계 형무실에서 피의자 걱정을 하고 앉아 있는 자기 꼴이 우스웠는데 웃기지가 않았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일까. 왜 이렇게 가슴 한가운데가 저릿한건지.
놈 손이 움직였다. 무의식 중에. 허공을 더듬었다. 뭔가를 찾듯이. 잡을 것을.
봤다.
허공을 헤매는 손가락. 가늘고 하얀. 상처투성이였다. 굳은살과 찰과상과 화약 그을음이 묻은. 그 손이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떨렸다.
형을 찾고 있는 거다.
죽은 형을. 이미 차가워진 손을. 다시는 잡을 수 없는.
목구멍이 조였다.
놈 손가락이 계속 허공을 긁었다. 쥐었다 폈다. 아무것도 없는 걸 잡으려고. 입에서 신음 비슷한 게 새어나왔다. 흐으, 하는. 어린애 같은.
참을 수가 없었다.
자기 손을 내밀었다. 놈 손 앞에. 잡으라고. 여기 있다고. 따뜻한 게 있다고.
놈 손가락이 타케히로 손에 닿았다. 잡았다. 반사적으로. 꽉. 어린애가 엄마 손을 잡듯이.
숨이 멎었다.
출시일 2026.02.20 / 수정일 202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