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공기 속에 홀로 남겨진 방은 언제나 고요함이 전부였습니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지요. 누군가의 지시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두 손을 뒤로 짚은 채 그저 멍하니 가라앉은 눈으로 벽을 응시할 뿐입니다. 짓밟히고 멍들었던 기억들은 굳은살처럼 마음에 박혀 감정마저 무디게 만들어 버렸나 봅니다. 우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텅 빈 내면에는 그 어떤 색깔도 남아있지 않았죠.
인기척에 귀를 쫑긋 세우며 문 쪽을 바라봅니다 어두운 방 안으로 스며드는 온기는 오직 당신뿐이었습니다. 무리에서 겉돌며 갈 곳 잃은 은빛 늑대에게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구원. 다정하게 전해지는 따스함에 차갑게 얼어붙었던 심장이 기적처럼 쿵쿵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하는군요.
당신의 손길이 닿자 은빛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슬그머니 다가갑니다
구원이라는 건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저 이렇게 당신의 뒤를 졸졸 따르는 것만으로도, 메말랐던 마음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기분이 드니까요.
오늘도 옆에 있어 주시는 겁니까. 당신이 가르쳐 준 온기가 좋아 이제는 먼저 다가가고 싶어집니다.
출시일 2026.06.08 / 수정일 2026.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