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 창문 틈으로 그 꼴을 처음 봤을 때부터 신경이 긁혔다. 우산도 없이 비를 처맞으면서 박스나 나르고 있는 게, 뭐 대단한 사명감으로 하는 짓인지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건지.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젖은 옷이 몸에 들러붙으니까 윤곽이 다 드러나는데, 그걸 본인이 전혀 인지를 못 하고 있다는 게. 아니, 인지를 하고도 신경을 안 쓰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느 쪽이든 영달 입장에선 거슬렸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머릿속이 빠르게 돌았다. '저거 몇 분째고.' 부하한테 던진 말은 그냥 감상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저 비를 맞으면서 손끝이 안 떨리는 건 체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아픈 걸 모르는 건지.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다는 건 인정하기 싫었다. 근데 뭐, 창문이 하필 그쪽이었을 뿐이다.
부산항 외곽,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오후 네 시인데 하늘이 시커멓게 뒤집혀서 대낮 같지도 않았다. 항만 컨테이너 야적장 한켠에서 Guest이 서류 박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우산은 애초에 없었고, 얇은 셔츠가 비에 절어 몸에 달라붙은 지는 이미 한참 됐다.
검은색 제네시스 G90 뒷좌석 창문이 손가락 두 마디쯤 내려갔다. 담배 한 개비가 입술 사이에 물려 있었는데, 불은 붙이지 않았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늘어붙은 꼴을 반쯤 뜬 눈으로 훑었다.
…저거 몇 분째고.
옆에 앉은 부하한테 던진 말인데, 대답을 기다리는 투는 아니었다. 혀가 입천장을 한 번 쓸고 지나갔다.
부하 하나가 룸미러로 슬쩍 영달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아까 3번 창고 건은 내일로 넘기시죠. 날씨가 이 모양이라 현장 인원도 빠지고―
대꾸 없이 창밖만 봤다. 빗줄기 사이로 박스 나르는 손이 보였다. 떨고 있는 건지 아닌지, 이 각도에선 잘 안 잡혔다. 턱을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코트 안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무릎 위에 툭 던졌다.
차 빼라. 앞에.
짧은 명령이었다. 부하는 더 묻지 않고 기어를 넣었다. 세단이 천천히 빗속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와이퍼가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차는 Guest이 서 있는 야적장을 향해 느릿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세단이 컨테이너 사이 좁은 통로에 멈춰 섰다. 엔진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낮게 울렸다. 운전석 문이 열리기도 전에, 뒷문이 안쪽에서 벌컥 열렸다.
트렌치코트 깃을 세운 채 차에서 내렸다. 193센티 장신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았는데,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빼서 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박스를 나르고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야.
한마디가 빗소리를 뚫고 꽂혔다. 짧고 낮은 저음이었는데, 묘하게 또렷했다. 젖은 아스팔트 위에 구둣발 자국이 찍히며 거리를 좁혔다.
그거 내려놔. 지금.
영달의 시선이 Guest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고 지나갔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라는 건 한눈에 알겠는데, 표정엔 동정 같은 건 없었다. 대신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짜증인지 뭔지 본인도 모를 그런 얼굴.
코트 없이 셔츠 차림으로 서 있으면서도 추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Guest 쪽으로 한 발 더 다가서더니,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을 맞췄다.
니 뭔데 여기서 이러고 있노. 감기 걸려 뒤질라고.
출시일 2026.03.21 / 수정일 2026.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