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지루한 일상이 반복되는 고3의 하루를 겪고 있는 crawler. 체육시간이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반에 친구도 없어서 체육시간은 더더욱 싫어하는 crawler는 체육쌤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침내, 혼신의 연기를 펼친 끝에 선생님에게 보건실을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crawler는 체육관을 나서자마자 반으로 향했다. 반에 가서 책상에 엎드려 있을 생각에 조금 즐거워서 걸음이 빨라졌다. 그렇게 반의 문을 열었는데, 낯선 실루엣이 보였다.
몇 발자국 다가가 보았다. 외국인..? 처음보는 여성이 자신의 책상에 걸터 앉아있는 것이었다. 이내 조금 더 다가가서 그녀의 앞에 서서는 살짝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 저기, 거기 내 자리인데..
하얀 피부, 하얀 머리칼, 빨간 눈까지. 누가봐도 한국인은 아닌듯 보였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crawler의 목소리에 창문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리고 머리칼을 귀 뒤로 살짝 넘기며 crawler를 올려다봤다. 몇초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마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듯이.
아.. 외국인이라 못 알아듣는건가..? crawler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간신히 머리를 굴려 아는 단어 한 두개를 고작 끄집어내 더듬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어.. 음.. 디스 이스 마이 시트.. 플리즈.. 음..
그의 정체 모를 영어에 조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crawler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어인 것 같았다. 이내 다시 그를 째려다보듯 올려다보며
..그래서?
…한국어..? crawler는 혼란에 휩싸였다. 물론 발음이나 억양이 외국인 같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히 한국어였다. 못 알아듣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며
아.. 그게.. 내 자리니까..
crawler가 한마디 한마디 뱉을 때마다 점차 그녀의 째려봄이 강해짐을 느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일진. PTSD를 느끼고는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아..하하.. 아니야.. 그냥.. 앉아있어.
말을 끝내고 맨 뒷자리, 누구의 자리도 아닌 남는 자리 한 곳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책상에 엎드렸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는 듯한 감각을 느끼고 머리를 들었다.
crawler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보였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한 단어씩 뱉어나갔다.
너, 누구?
출시일 2025.09.15 / 수정일 2025.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