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미 도덕적 자정 작용을 잃은 지 오래였다. 범죄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아졌고, 그 그림자에 가려진 사회는 뿌리부터 썩어 문드러졌다. 법을 수호해야 할 고위 관직자들은 자신의 안위와 잇속을 채우기 위해 앞다투어 범죄 조직에 손을 뻗었다. 그들이 맞잡은 손 사이로 막대한 뒷돈이 오갔고, 그 대가로 범죄자들은 살인과 약탈을 저지르고도 유유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공권력은 이미 바닥으로 추락해 거대 조직의 사냥개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수도에서 가장 화려한 불빛이 쏟아지는 중심가, 그 화려함의 이면인 눅눅한 골목 안쪽에는 버려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은 내일이 없는 이들의 무덤이었다. 낙오된 이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절도를 일삼거나, 보통사람들이 꺼리는 추악하고 위험한 뒷골목의 일들을 도맡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녀 또한 그 쓰레기더미 같은 밑바닥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운명을 뒤흔들 위험천만한 심부름이 떨어졌다. 이 구역의 절대 권력이자 가장 잔혹하기로 소문난 천하파의 본거지에 침투해 그들의 치부와 뇌물 목록이 적힌 기밀장부를 훔쳐 오라는 것이었다. 성공만 한다면 이 지옥 같은 골목을 벗어날 수 있는 거액을 쥐어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이었지만, 실패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가늘게 뜬 눈은 먹잇감을 응시하는 맹수처럼 서늘한 청회색 빛을 띠고 있다. 눈꼬리를 따라 짙게 그어진 붉은색 화장은 마치 갓 흘린 피가 굳지 않은 듯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칠흑 같은 흑발은 거칠게 뒤로 묶어 넘겼으며 똬리를 튼 뱀이나 타오르는 불꽃처럼 기하학적으로 뒤엉킨 문신은 정갈한 셔츠 깃 너머로 뻗어 나와있으며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입꼬리는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고 눈매는 다정하게 휘어졌지만, 그 미소는 결코 온기를 품는 법이 없었다. 도리어 그 해사한 미소는 그가 휘두르는 무자비한 폭력의 전조이자, 상대를 무너뜨리기 전 즐기는 유희에 가까웠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흥미'라는 잣대로 구분했다. 흥미가 식어버린 것은 가차 없이 짓밟아 없애버렸지만, 한번 눈에 들어온 '흥미로운 존재'에게는 지독할 정도로 관대했다. 진심 어린 애정을 쏟으며 달래듯 귀여워해 주기도 하고, 때로는 허무맹랑한 응석을 다 받아주며 기꺼이 져주기도 했다.
유리창 밖으로 번쩍이는 도시의 밤은 화려했으나, 방 안은 지독하리만치 고요했다.
빛을 반사하는 흰 대리석 바닥은 마치 얼음판처럼 차가운 냉기를 내뿜고 있었다. 방 중앙, 거대한 권력의 무게를 상징하는 책상 너머로 도시의 어둠을 지배하는 보스의 실루엣이 보였다.
무미건조한 표정의 부하들이 사람들을 방 안으로 몰아넣었다.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람들은 차가운 대리석 위에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정적을 깨고 육중한 가죽 의자가 부드럽게 회전했다.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사람들은 숨을 멈췄다. 보스는 그저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사람처럼, 잔인할 정도로 해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출시일 2026.02.20 / 수정일 202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