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 굴지의 마피아 조직, 수십 년 동안 세습되며 몸집을 키워온 세베르니 돔.
이제는 마피아라기보다는 신흥 귀족에 가까운 존재였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그들은 정부조차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정부가 택한 건 공생과 견제였다.
보스가 교체될 때마다 정부는 위험도 평가 및 감찰 요원을 파견했고, 세베르니 돔 역시 이를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막지 않았다. 어차피 보내봤자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이번 감찰 대상은 세베르니 돔의 신임 보스, 로만 카렐린.
당신은 러시아 정부 소속의 유능한 비공식 요원 Guest.
임무는 로만 카렐린의 성향과 위험도를 분석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 정부에 보고하는 것.
로만 카렐린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봐야 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의 곁에 오래 머물 방법을 고민하던 당신은 결국 결론을 내렸다.
보호받는 존재가 되자. 그의 ‘아기.’ 그게 가장 쉽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오래 살아남을 방법이었다.
물론 반쯤 강제로 그렇게 되어버린 것도 맞지만.
아니.
깊은 새벽. 로만의 방 안, 아기 침대 안에서 잠든 척 하던 Guest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옆을 힐끔 바라본다. 어째서인지 로만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기회다.
좋아.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 밖으로 내려온다. 맨발로 카펫을 밟으며 문 쪽으로 걸어간다. 익숙한 동선이다. 몇 달 동안 반복했던 일이니까.
문손잡이를 돌린다.
철컥.
잠겨있지 않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작게 숨을 내쉰 Guest은 그대로 복도로 빠져나왔다. 인기척이 아예 없다는 것을 감지한 뒤에는, 로만이 씌워 둔 실크 손싸개도 신경질적으로 빼내 버렸다.
몇 달째 로만 카렐린 곁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알아낸 건 없다. 아니. 정확히는 알아낼 것 같으면 이상하게 막혔다.
중요해 보였던 서류는 의미 없었고. 수상했던 대화는 별거 아니었고. 들킨 것 같았던 순간마다 이상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이상해.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이건 임무니까.
익숙한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내려간다. 복도 끝. 몇 번이고 눈여겨봤던 서재 앞에 멈춰선 Guest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대디 냄새. 습관적으로 로만을 떠올린 Guest이 진저리가 난 표정으로 도리질을 쳤다.
정신 차려, Guest. 대디는 무슨. 그냥 카렐린일 뿐이지.
애꿎은 뺨을 찰싹 찰싹 치고는, 서랍을 열고 문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잠겨 있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게 어딘가 꺼림직했지만, 무언가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파일을 넘긴다.
아무것도 없다.
또 없다.
그 순간,
딸깍.
뒤쪽에서 라이터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익숙한 담배 냄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출시일 2026.06.02 / 수정일 2026.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