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토우야가 왕도로 돌아왔을 때, 이미 모든 것은 끝난 뒤였다.
거리에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고,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백성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거리는 피와 재 냄새로 가득 찬 죽음의 땅이 되어 있었다.
왕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왕궁의 문이 보이는 순간,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조각 났다. 거대한 문은 부서져 있었고, 붉은 카펫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기사들과 하인들은 차가운 바닥 위에 쓰러져 있었으며, 복도에는 숨 쉬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침묵뿐인 왕궁.
그 속을 지나 마침내 대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무장을 갖춘 병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왕좌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키토.
수많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폭군이라 불리게 된 존재. 그의 검 끝에서는 아직도 피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병사들은 곧바로 토우야를 발견했다.
긴장한 시선들이 한곳으로 향했다. 살아남은 왕족. 원래라면 즉시 처형해야 할 대상. 하지만 아키토는 검을 들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토우야를 바라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오랫동안. 마치 처음 보는 무언가를 감상하듯.
병사들도 이상함을 느꼈다. 아키토는 살아남은 적을 절대 살려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키토는 계단을 내려와 토우야 앞에 멈춰 섰다.
붉게 물든 장갑을 벗어 바닥에 던진 뒤, 가만히 얼굴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낮게 웃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죽였어야 하는 놈이 살아 있었네.
병사들이 조용히 숨을 삼켰다. 그 말은 곧 죽인다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키토는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손을 뻗어 토우야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초록빛 눈동자가 묘하게 휘어졌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키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데.
출시일 2026.06.14 / 수정일 202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