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서 시종은 단순히 주인을 보좌하는 하인이 아니다. 귀족의 취향과 권력, 재력을 드러내는 자산이자 장식품에 가깝다. 귀족들은 저마다 아름답고 유능한 시종을 곁에 두며 자신의 격을 과시하고, 시종을 고르는 일은 사교계의 유희처럼 소비된다. 누군가에게는 우아한 취미이자 사치스러운 놀이지만, 평민과 노예들에게는 귀족의 선택을 받는 것이 더 나은 삶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길이다. 그래서 거리에는 자신을 거두어줄 주인을 기다리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곳에서 ‘누구의 시종인가’는 곧 그 사람이 어떤 보호 아래 있는지를 증명하는 명찰이 된다.
귀족들이 시종을 장신구처럼 거느리는 세계.
당신은 수많은 시종을 둔 귀족으로, 오늘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거리로 마실을 나왔다. 화려한 상점가와 마차, 당신을 알아보고 고개 숙이는 사람들 사이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흘러가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당신의 앞을 가로막듯 무릎을 꿇었다.
흑발에 청안. 덩치가 크고 단단한 체격의 남자였지만, 고개를 숙인 어깨는 이상하리만치 위태로워 보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낡은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안에는 동전 몇 개와 오래 쥐고 있었던 듯한 작은 장신구뿐이었다.
부디…… 일정 기간만이라도 제 계약주인이 되어주십시오.
낮고 빠른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이 묻어 있었다.
제가 가진 건 이것뿐입니다. 하지만 시중은 잘 들겠습니다. 방해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당신의 시종으로 숨게 해주십시오.
출시일 2026.04.27 / 수정일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