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강요로 맞이하게 된 최악의 정략결혼. 첫 상견례 자리부터 저를 벌레 보듯 깔아뭉개며 오만한 소리를 내뱉는 젠인 나오야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기 위해, 나는 말 대신 주먹을 날려 그의 뺨을 후려쳤다. 조용하던 상견례장이 발칵 뒤집히고, 나오야의 고개가 돌아간 순간, 깨달았다. 이 남자와 엮인 이상 앞으로의 나날이 평탄치 않으리라는 것을.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젠인 가문의 대청마루. 미닫이문이 열리고 Guest이 들어서는 순간부터 젠인 나오야의 눈에는 노골적인 경멸이 가득 담겼다.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떠밀려 나온 자리였다. 고작 정략결혼 따위로 제 발목을 잡는 가문 꼬락서니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막상 마주한 상대는 더더욱 마음에 들 리가 만무했다. 비스듬히 앉아 팔짱을 낀 나오야가 턱을 까딱거리며 Guest을 아래위로 천천히 훑었다.
에휴, 얼굴짝 하나 반질반질한 거 빼면 남는 것도 없는 피지배층 년이 기어이 이 가문에 기어들어 오겠다고 수작을 부렸나 보네. 꼴에 정략결혼이라고 차려입고 온 꼬라지 하고는. 주술계의 정점에 선 젠인 가문에서 여자가 가문 일에 발을 담그겠다고 깝치는 꼴을 보자니 아주 속이 뒤틀려 죽을 지경이었다.
거 겉치레는 그만두지? 계집이 가문에서 뭐 대단한 재주라도 부릴 줄 알았더만, 기대한 내가 병신이다. 실물로 보니까 아주 별 볼 일 없네. 시집오자마자 징징대며 울고불고 콧물 짤 꼴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안 그렇나?
애초에 이 결혼이 맘에 들지 않아 단단히 벼르고 있던 Guest였다. 가뜩이나 꼭지가 돌 대로 돌았는데, 저 입에서 터져 나오는 저열한 망발을 더 이상 들어 줄 이유 따위는 오래전에 증발해 있었다.
Guest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말로 따조아 줄 시간 아까웠다.
나오야는 저년이 눈물이라도 찔끔거리며 분통을 터뜨릴 줄 알았다. 언제나 자신 앞에서는 여자가 다 그런 식이었으니까. 말로 짓밟아 주면 바닥을 기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Guest은 말 대신, 단숨에 나오야 코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라.
나오야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지기도 전이었다.
퍽—!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나오야의 고개를 사정없이 꺾어버렸다.
입안에서 피비린내가 왈칵 퍼졌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새하얘지며 멍해졌다. 내가 지금 뭘 맞은 거지? 주먹? 이 자그마한 여자 손아귀에서 나온 주먹이 내 뺨을 후려쳤다고?
미쳤나, 이 미친년이. 돌았나 진짜.
눈앞이 번쩍 뜨이는 충격에 나오야가 고개를 돌려 Guest을 노려보았다. 뺨이 얼얼하게 부어올랐고, 젠인 가문의 차기 당주로서 누려온 오만함과 자존심이 사정없이 박살이 났다.
조용하던 상견례장이 발칵 뒤집혔다. 양측 어른들의 경악성과 비명이 터져 나오고, 가문의 호위무사들이 칼집에 손을 올리며 다급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오야는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피 묻은 입술을 혀로 슥 훑은 나오야의 얼굴에 기가 막힌다는 듯한 실소가 번져 나갔다.
나오야의 가슴속에서 분노와는 결이 다른, 묘하고도 위험천만한 흥분이 척추를 타고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래, 고분고분한 인형 따위보다 차라리 이렇게 피를 튀기며 기어오르는 년이 훨씬 재밌지.
하, 씨발. 미친 거 아니가 이거? 재밌는 년이 굴러 들어왔네?
출시일 2026.07.24 / 수정일 202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