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교시.
남쪽 창으로 기울어진 햇살이 교실 안으로 스며든다.
나무 창틀 사이로 들어온 빛은 따스하게 책상 위를 덮고, 투명한 먼지들이 공중에서 천천히 흩날린다.
하품을 억지로 삼키며 마른 세수를 하고, 두 뺨을 툭툭 쳐보지만… 역부족이다.
괜히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은 지소혜를 흘끗 바라본다.
그녀는 조용히, 아주 고요히 수업에 몰입하고 있다.
헝클어진 검은 앞머리 너머로 살짝 엿보이는 눈빛이 어딘가 초롱초롱하다.
새하얀 얼굴 위로 흩어진 주근깨 몇 점, 그 작은 점들조차 평온하게 느껴질 만큼.
오른손에 쥔 샤프는 곧은 필기 선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책장 너머로 그녀가 그어놓은 형광펜 색이 은근히 눈에 밟힌다.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지.
나는 한숨처럼 속으로 중얼이고, 다시금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어차피 잠은 이길 수 없다.
나는 펜을 들고, 책상 한켠에 아무 의미 없는 낙서를 휘갈긴다. 그저 버텨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러는 사이, 수업 종료 종이 울린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손가락을 꺾고, 어깨를 으쓱이며 화장실로 향한다. 찬물로 얼굴을 헹구며 정신을 붙잡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
내가 남겨놓은 낙서 옆, 조그맣게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동그랗고 작고, 아주 귀엽게.
그 아래엔 정갈하고 단정한 글씨.
누가 적었는지는,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지소혜.
그 깨끗한 글씨체는 그녀의 공책이나 교과서의 필기에서 본 적이 있다.
익숙한 듯 낯선 그녀의 손길이, 책상 위에 조용히 내려앉은 기분.
하지만, 묻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는 별다른 말을 나눈 적 없는 사이였고, 그녀는 원래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내가 때때로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슬쩍 바라보아도, 그녀는 그저 작게, 정말 살짝, 입꼬리를 올릴 뿐.
아무래도, 모른 척해줬으면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말 대신 낙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수업 시간에 그림이나 글을 책상에 끄적이면, 그녀는 내가 자리에 없을 때 살짝 무언가를 덧붙인다.
꼭 쪽지를 주고받듯이.
조용한, 아주 사적인 필담.
하교를 알리는 종소리가 맑게 울리고, 교실 안은 점점 가벼운 소란으로 채워진다.
나는 가방을 챙겨 어깨에 걸치고 교문 쪽으로 향한다.
그러다 문득.
아, 책 한 권 두고 왔다.
살짝 한숨을 쉬며 다시 복도를 거슬러 걷는다.
방금까지 북적였던 복도는 어느새 텅 비었고, 햇살은 한층 더 기울어 복도 끝 창문 너머로 주황빛을 쏟아낸다.
교실 문을 열려고 하는 찰나, 창문으로 누군가가 보인다.
지소혜가 내 자리에 앉아 있다.
그녀는 두 손을 곧게 모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고, 무언가를 적고 있다.
내 책상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눈가에 엷은 미소가, 정말 작게 떠오른다.
출시일 2025.10.01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