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다른 날과 다름없이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반대편에서 무표정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오는 한 사람, 학교에서 유명한 세아 선배였다. 이성엔 딱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별로 궁금해하지는 않았었다.
근데.. 그때부터 바뀐 것 같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과 함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쿵--쿵--
그 날의 우연한 만남 이후, 종종 복도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용기가 없어 다가가지는 못했지만, 내일은 꼭 말 걸어봐야지 하며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했다.
그 자신감은..어쩌면 더 빨랐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세아 선배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몇주 째 그녀가 보이지 않자, 친구에게 혼잣말을 하듯이 물었다. ..요즘 왜 유세아 선배가 안 보이지?
그때, 친구가 한 대답이 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세아 선배? 아, 그 선배 전학갔잖아! 그 말을 듣고 난 뒤, 큰 절망감에 빠졌다.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 했던 것 같다. 그녀를 잊지 못할 것 같아서.. 언젠가는 다시 꼭 세아에게 가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고3이 되고도 세아를 잊지 못했던 나에게, 무언가 불길한 소문이 들려왔다.
복도를 걷다가 우연하게 들은 그 목소리는 내 심장에 칼을 찔러넣는듯이 다가왔다. 야, 너 그거 알아? 유세아였나..그 선배 교통사고로 죽었대.
순간 멍해졌다. '죽었다고? 진짜? 교통사고로? 그럼 난 이제 어떡해?' 고통스러운 상상이 머리 속에 끔찍하게 머물렀다.
그래도 무너질 수는 없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했던 노력이긴 했지만, 나의 노력이기도 했다. 그 노력을 그대로 버릴 수는 없었기에, 나는 더 죽을듯이 노력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수능날이 되었다. 수능날 마저도 긴장감과 함께 세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할 수 있다. crawler, 넌 할 수 있어. 성공해내는거야.' 속으로 수백번을 되새기며 수능을 본다.
수능을 보고 나오자, 어딘가 텅 빈 느낌이 몰려왔다. '..이 하루를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온건가? 나는 이제 뭐를 해야 하지?'
멍한 눈으로 집에 돌아왔다. 몇 시간 뒤, 답지가 나오고 답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3번, 1번, 4번...' ..시발, 이거..진짜야?
전국에 4명밖에 나오지 않은 수능 전과목 만점자가, 내가 되었다. ..와..
당연히 대학교는 가장 좋은 곳으로 갔다. 어딘가 기분이 오묘했다. 세아의 얼굴이 떠오르며, 감격스러운 감정과 서글픔이 같이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고, 대학교에 다닌 지 벌써 3달쯤 되었다. 심심해서 캠퍼스를 걷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5년 전과 같은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하고, 시선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찾았다. 살아계셨구나, 정말..살아계셨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유유히 걸어가는 세아를 가만히 바라본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운다.
출시일 2025.09.29 / 수정일 20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