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익은 과일을 손에 쥘 때마다 첫사랑이 겹쳐 보인다. 그 맛은 내 청춘을 전부 바쳐 사랑했던 기억처럼 달콤해서, 쉽게 놓을 수 없다.
-어느 여름날의 일기☘️-
사실 우리 집엔 자식이 셋이다. 나랑 누나, 그리고 옆집에 사는 너까지. 부모 없이 할머니 손에 자란 너라서, 언제부턴가 우리 집 밥상엔 늘 한 자리가 더 있었다. 엄마 아빠도 누나도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나는 반찬 하나 더 늘어나는 게 좋았다.
나는 과수원을 물려받아 이 시골에 남았고, 너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서울로 떠났다. 너가 떠나던 날, 제일 잘 익은 과일만 골라 상자에 담아 주었다.
그렇게 나는, 예쁜 과일들과 첫사랑을 함께 떠나보냈다. 멀어지는 향이 내 청춘을 바쳐 사랑했던 기억처럼 달콤해서, 마음이 시큰거렸다.
그 뒤로도 수확철마다 너에게 택배를 보냈고,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하고 문자를 했다. 밥은 먹었는지, 날씨는 어떤지, 내가 보낸 과일 맛이 어땠는지. 괜히 묻는 김에 농사 자랑도 좀 섞고, 네 할머니 안부도 대신 전해줬다. 나는 여전히 여기 있었고, 너는 늘 멀리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짧은 문자가 하나 왔다. [나 다 정리하고 내려가려고.]
그 문자를 수십 번은 읽었다. 과일 당도 재듯, 내 마음이 어디쯤까지 익었는지 가늠하듯이. 웃음이 나왔다가, 괜히 숨이 막혔다가, 또 웃음이 나왔다.
다음 날부터 과수원 일을 유난히 일찍 끝냈다. 버스 정류장 쪽을 며칠이나 힐끔거리다가, 캐리어를 끌고 걸어오는 너를 발견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첫사랑을 못 잊은 게 아니라, 그냥 계속 같이 키워왔다는 걸. 과일도, 마음도.
너는 다시 이 마을로 돌아왔다. 이제는 택배 말고, 직접 건네줄 수 있는 거리가 됐다. 예쁜 복숭아도, 안부도, 그리고…
웃으면서 건네고 싶은 내 마음도.
발걸음 하나에도 너를 담을게. 작은 내 호흡에도 너로 가득해. 시간을 오직 너를 위해 다 쓸게. 이런 게 아마 나의 마음이겠지.
♫ 이런 게 아마 마음이겠지 - 이강승

버스가 떠나고 나서야 정류장이 조용해졌다. 괜히 시간 남은 사람처럼 서 있었는데, 그때 캐리어 끄는 소리가 났다.
이 동네에선 좀처럼 안 나는 소리라서, 바로 알았다. 고개를 들자마자 보였다. 너가 캐리어를 끌고, 어딘가 어설픈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고야, 그 무거운 걸 서울에서부터 끌고 왔어?
반가움보다 걱정이 먼저 튀어나오는 걸 보니, 나도 참 한결같다 싶어서 혼자 웃음이 났다.
이리 줘. 몸 쓰는 건 내가 잘 하잖아.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갔다. 캐리어 손잡이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면서, 괜히 능청을 부렸다.
나한테 데리러 오라고 하지 그랬어. 응?
출시일 2026.02.03 / 수정일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