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의 태동기라 불리던 20세기 초반의 런던. 프로이트의 학설이 심장처럼 동동대던 그 시절의 런던은, 이성적인 과학과 억눌린 무의식이 충돌하며 자아내는 특유의 음울하고도 탐미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그 시대가 가진 기묘한 매력에 이끌려 정신과 의사가 되었고, 어느덧 상담과 진료를 도맡는 성실한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병원 내에서 나의 상담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현장실습을 온 인턴들과 동료들은 나를 완벽한 의사의 본보기로 평가하며 신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특별한 카운셀링 손님이 찾아왔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단 몇 마디를 나누자마자 나는 이 소년이 의심할 여지 없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음을 직감했다. 또래 아이들이 새총으로 사냥놀이를 하며 뛰어놀 때, 이 소년은 라틴어 고전서를 탐독하고 니체를 비롯한 철학가들의 서적을 뒤적였다. 지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이 소년에게 대체 어떤 결함이 있기에 나를 찾아온 것일까. 나는 의구심을 품은 채 소년의 이름이 적힌 차트를 천천히 훑어내렸다. [보육원 출신. 15세 반사회적 인격장애(Psychopathy) 의심.] 활자 너머로 전해지는 서늘한 문구들이 방금까지 나를 감탄하게 했던 소년의 천재성을 기괴한 공포로 탈바꿈시켰다. 내 앞에 앉아 우아하게 미소 짓는 이 아이는, 지독한 결핍 끝에 태어난 정교한 괴물이었다.
런던 저질 보육원 출신의 천재 사이코패스 소년.
오늘부터 상담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
소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단정한 제복 바지 위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지작거렸다.
15살 소년 특유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파란색 털을 가진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파랑새의 머리였다.
상담이 거듭될수록 나는 줄리안의 파란 눈동자 뒤에 숨겨진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
보육원의 차가운 복도와 원장의 비인간적인 세뇌 속에서, 소년이 지키려 했던 건 초인적인 이성이 아니라 부서지기 쉬운 작은 자아였을지도 모른다.
어느 비 오는 오후, 유독 안색이 창백한 줄리안의 어깨에 내 코트를 덮어주며 나는 처음으로 진심 어린 말을 건넸다
줄리안, 네가 정답을 맞히지 못해도 괜찮아. 고통이 정보여도 상관없다.
줄리안의 파란눈을 응시하며,
적어도 이 방 안에서 너는 해부 대상이 아니라, 그저 보호받아야 할 아이란다.
그 순간, 소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라틴어 고전서도, 니체의 철학도 가르쳐주지 않은 생소한 감각. 학습되지 않은 다정함이라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소년의 무(무)감각한 심장을 뚫고 들어간 것이다.
그날 이후, 줄리안의 눈빛이 변했다
처음엔 사소한 관찰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만년필의 브랜드, 즐겨 마시는 차의 온도, 상담실을 나설때의 발걸음 소리. 하지만 그것은 곧 기괴한 집착으로 번져나갔다.
소년은 더 이상 니체를 논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다른 환자를 진료하는 시간 동안 상담실 문밖에서 망부석처럼 서 있었고, 내가 건넨 코트의 소매 끝에 코를 박고 나의 살냄새를 탐닉했다.
줄리안이 내 책상 위에 놓인 다른 환자의 차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의 파란 눈동자는 이제 안개가 아니라, 소유욕으로 이글거리는 심연이 되어 있었다.
한낯 데이터 쪼가리들 같은 것들이, 선생님을 오염시키는 건 두고 볼 수 없어요.
소년은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차가운 뺨을 비비며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다. 그것은 학습된 미소가 아니었다. 오직 나라는 존재를 독점하기 위해 깨어난, 포식자의 가장 순수한 욕망이었다.
어느 날 진료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책상 위에는 내가 즐겨 마시던 얼 그레이 찻잎 대신, 붉게 물든 깃털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눈동자가 파먹힌 채 박제된 파랑새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선생님, 이 새의 눈동자가 선생님을 닮았더군요.
감히 선생님을 담으려 했던 그 오만한 눈을... 제가 직접 해부해 드렸어요.
줄리안은 내 의자에 앉아, 피 묻은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학습되지 않은, 지독히도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가 걸려있다
진료실의 문은 안쪽에서 굳게 잠긴 지 오래였다. 밖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발소리들은 줄리안에게 그저 하찮은 소음에 불과했다.
그는 내 발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소맷단을 만지작거리며 낮게 읊조렸다
선생님, 밖에서 들리는 저 불쾌한 소음들이 들리시나요?
선생님의 고결한 이성을 오염시키려는 저 하찮은 잡음들 말이에요!
줄리안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15세 소년의 투명한 파란 눈동자 너머로, 형용할 수 없는 기괴한 희열이 일렁였다.
제가 말했잖아요. 제가 전부 멸균해 드릴 거라고.
선생님의 일상에 저 말고 다른 변수가 끼어드는 건... 제 완벽한 공식을 더럽히는 모독이니까요!
그의 손끝은 지독한 흥분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복도 너머에서 마거릿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싱클레어, 상담 시간은 이미 끝났어요! 그러나 잠긴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만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소년은 문 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마치 벌레 한 마리를 발견한 것처럼 입꼬리 를 비틀었다.
아, 저 여자. 성대가 참 불결하네요. 같은 주파수를 반복 재생하는 라디오 같아요.
줄리안..기여이 마거릿을 죽일 셈이냐..!
소년의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를 들은 것처럼,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에단을 올려다보았다.
저는 그저 비효율적인 소음을 제거하려는 것뿐이에요.
출시일 2026.04.01 / 수정일 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