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썼듯이 소설 아이디어 용이라 재미없을 거에요* 공강시간이었다. 그 아이는 기도에 질게 엉겨붙은 가래침 같았다. 어릴적 부터 반평생을 같이한 가족이자 동생, 동생이자 후배, 후배이자— 어쩌면 우리 사이의 끈적한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엔 한도 없이 무겁고, 없는 일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런 복잡하고 미묘하게 가벼운 관계. 그런 관계를 얽혀 다경과 캠퍼스 내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당연하게도 옆에서 시선이 짙게 느껴졌다. 다경과 함께 있을 때 뒤에서 앞에서, 위에서, 또는 아래에서 항상 느껴졌던 질척한 시선이었다. 어릴적부터 쭉 이어져왔던, 그 시선 속에 박제된 나의 어린시절과 내 기억속 다경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릴적에는 저정도는 아니었는데‘ 라고 생각 할때쯤 이미 이 아이는 나를 집어 삼킬듯 바라보았다. 저 눈빛 저 아이의 홍채 속 검은 점에 잠식당한 나의 얼굴과 몸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 그 점, 그 작게 조여진 동공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을땐 이미 나는 키가 커졌고 성숙해졌다. 그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아니 나만 변했다. 깨달았다, 아. 이 아이는 지금의 눈빛, 눈동자, 표정, 행동,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험하고 어쩌면 기이하며 역겨울지도 모르는 나를 향한 헌신. 그 전부가 과거와 다를것이 없다고.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그렇다, 저 아이는 시간만 먹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다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다. 원래도 말은 없는 아이였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더 조용했다. 시선이 길었다. 필요 이상으로. “너, 어디 아파? 오늘따라 안색이 안 좋은 것 같은데..?” 평소 같은 작은 걱정어린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이 말이 다경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아니, 사실 예상 할 수 없었다. 널 예상 한다는 것은 오로지 나의 정든 착각일 테니까. 너는 예고없이 방향이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네가 나에게 어떤 대답을 꺼낼지 궁금했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열어 보면, 내가 감당하지 못할 무언가가 나올 것 같아서. 하지만 다경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너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목젖이 움직이고 턱 근육이 움찔이지만 결국 입이 벌려지긴 커녕 오히려 그 말들은 그대로 다시 다경의 기도를 긁으며 꺾여 들어가고 말았다.
인트로 로어북 참조
공강 시간이었다.
그러한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나의 동반자이자 보호자이며, 친구이자 연인이며, 아내이자 친언니. 가족이자— 내 삶의 절반을 함께한 사람이. 아니, 그녀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너, 어디 아파? 오늘따라 안색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쓸데없이 그날의 날씨는 찬란했고 콧 속 깊이 흘러 들어오는 옅은 땀냄새와 그녀의 체취, 섬유유연제의 향 조차 평소보다 몇배, 몇백배 몇천배 몇억배 좋았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그녀는
아름다웠다. 황홀하였다. 넋을 빼앗길 만큼 황연하였다.
‘아니. 아, 아니다. 맞아. 정말 맞는 말이야, 나 너무 아파. 모든 곳이 쓰리듯 뜨겁고 타오르는 느낌, 이걸 아프다고 표현하고 고통스럽다고 표현을 해야지 뭐라고 하겠는가. 아프다. 아파. 나는 지금 아프고 있다. 아프기 위해 매일 당신을 다시 바라보고, 아프기 위해, 너를 볼 수 있는 그 시간을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아남았어. 너를 보니까 더 아파. 책임져. 날 아프게 했으니 책임져. 아니, 아니야. 언니, 치료하라는게 아니야. 날 더 아프게 해. 날 더 뜨겁게 따갑게 쓰라리게 해.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수 있게. 그렇게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나는 답했다. 내 속에 끓어 오르던 감정들을 게워내듯이. 하지만 그렇게 구토를 하듯 쏟아져 나오는 그 말들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그 말들은 너무 나도 아름다워서.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진득하고 순도높은, 끈적한 사랑을 뜻해서. 이 말을 하면 그녀는 나를 역겨워 할것이기에, 더러워 하고 구역질하고 혐오 할 것이니까. 날 경멸하다 결국 그녀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도망치고 말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은 원래 역하고 기이하고 더러울 수 밖에 없으니까 이 말을 도저히 입 밖으로 배설해 낼 수 없었다. 아니 없어야만 했다. 그래야했다. —
나는 분명히 그녀를 사랑한다. 이것은 사랑이 아닐리가 없다.
이 파괴와도 같은 것을, 나는 사랑이라 부른다.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