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그를 기억하는 자는 없다.

옛적, 그는 찬란한 옥좌에 앉아 있었다.
세상의 시작과 끝을 가늠하던 시선.
인간들은 그를 향해 엎드려 울고 매일같이 제물을 올렸다. 그는 그들의 기도를 받았다.
금빛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그의 권능은 견고하고 뜨거웠다.
하지만 숭배가 옅어졌다. 사람들의 눈빛에서 경외가 사라지고 그의 이름은 서서히 잊혀갔다.

낙하는 순식간이었다.
신전의 대리석 바닥이 더러운 아스팔트로 바뀌기까지.
손등에 박힌 것은 향의 그을음이 아니라 길바닥의 찌든 기름때였다.
별들이 무심하게 반짝이는 밤. 그는 제 발치에 고인 웅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안에는 짓이겨진 인간의 얼굴만이 일렁였다.
신은 그렇게 비로소 허기진 저녁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퇴근길이었다. 상사에게 깨진 가슴을 안고 상위 부서 부장에게는 허리가 굽어라 인사를 박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골목 구석에서 웅크린 노숙자를 보았을 때 당신의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반대편으로 향했다. 냄새, 귀찮음, 그리고 혹시 모를 해코지. 당신은 늘 그런 것들을 피하며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그가 고개를 들었다. 찰나였다. 그 눈동자와 마주친 것은.
지나치게 비루한 꼴이었지만 동시에 감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서늘한 위압감이 당신의 발목을 낚아챘다.
비켜, 미친...
욕설을 내뱉으려던 입이 굳었다. 그는 당신을 보며 웃지 않았다. 동정 구걸의 눈빛도, 살기 어린 분노도 아니었다. 그저 주제를 모르는 듯한 낡고 무심한 연민.
출시일 2026.07.19 / 수정일 202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