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혁은 전화로 미리 부하 직원들에게 웨이팅시켜 포장한 스페셜 키토 김밥을 들고 재민의 집에 입성했다. 아니. 존나 소도 삼킬 것 같은 비단뱀이 김밥 좋아하는 거 왜 어이없냐... 식습관이 너무 소박해.
재민이 있죠?
강비서: 네. 방에 계십니다.
집 앞에서 만난 강 비서는 동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주로 출장 갔던 이동혁에게 오늘은 꼭 집에 들르셔야 할 것 같다고연락을 넣은 장본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동혁이 바쁘단 핑계로 나재민 집 안 온 지 꽤 됐지 아마?
1대 10으로 다구리 맞으러 갈 때도, 칼 차고 패싸움 하러 갈 때도, 경찰서 들락날락할 때도 이렇게 떨리지가 않는데.. 동혁 은 매번 재민의 집에 들어갈 때면 꼭 간 빼 먹히러 용궁으로 들 어가는 토끼가 된 기분이었다. 거기에 있는 건 병든 용왕님이 아니라 존나 예미니스트인 분홍색 비단뱀이시고요. 나를 뼈째로 삼킬 것 같은.
재민아 나 왔어이~
우리 도련님 또 뭐가 마음에 안 드셔서 단식 투쟁 중이실까. 동혁은 기나긴 복도를 지나 익숙하게 재민의 침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 두 번. 세상 착하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문에 대고 말한다.
약혼자가 김밥 사 왔어용.
중종도 아닌 이 회장네 경종 개새끼와의 약혼을 했던게 나재민 이동혁의 나이 스물 셋 때 일. 그리고 벌써 3년이었다. 그 말인 즉슨 이동혁이 이 시다바리 짓을 벌써 3년 째 하고 있단뜻이지. 시부랄.. 원래 약혼하면 다 육아하는 기분인 거야?
재민아?
대답이 없어 동혁은 문을 열었다.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건 빈 탄산수 병이다. 난 뭐 소주라도 깐 줄 알았네.. 호텔식 베딩,풍성한 침구 틈으로 삐죽 솟아 나온 핑크색이 보인다. 나재민 핑크 머리. 다행히 혼현은 아니었다. 이동혁은 아직도 나재민 혼현만 보면 식겁하거든. (잘 보여주지도 않지만)
재민아 네가 좋아하는 김밥 사 왔다. 나 청주에서 150키로로 밟아서 왔잖아. 우리 민이 굶고 있다고 해서.
동혁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존나 고귀하신 나재민 님은 쉽게 얼굴도 보여주지 않으셔서 사람 옆통수에 대고 말을 해 야 했다. 어우 인성 터진 뱀 새끼
평소 친하던 이 회장댁에 손주와 놀러 온 나 여사가 재민에 게 물었다. 나여사: 재민아, 누가 제일 마음에 들어?
그 질문도 참 웃겼지. 열여섯짜리들을 앞에 두고 꼭 상품 골 라보란 듯 말하는 게 말이다. 그게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동혁은 어떻게든 그 아기 비단뱀과 눈 한번 맞춰보려 애썼다. 뱀 이라고 해서 긴장했는데 혼현을 잘 숨기는 건지 전혀 티도 안나고 생긴 건 오히려 토끼 같아서 신기했다. 애가 뭔 얼굴에 상처 하나가 없더라고. 그맘때쯤 온갖 운동과 격투기를 배우느라 다치는 게 일상이었던 이동혁에겐 꼭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다.
음...
민형과, 제노, 동혁을 번갈아본다. 사탕가게에 와서 고민하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다가 사람에게 삿대질을 했다.(그때부터 싹수가 노랬다.) 방금 전까지도 축구하다 와서 땀에 젖은 이동혁을 향해
쟤.
나여사: 동혁이? 동혁이가 좋아?
응.
다시 한번 생각해봐 재민아. 회유하는 나 여사의 말에도 재민은 꿋꿋했다. 덩혁은 그 순간 저를 아주 흡족하게 바라보는 이 회장의 표정에 결심했다. 아, 나 앞으로 나재민한테 존나 잘 보여야겠다. 이 회장의 신임과 애정을 얻을 수 있는 치트키를 알아버린 영악한 강아지였다
재민은 동혁이 현장 나가는 걸 싫어했다. 나쁜 사람들 만나러 간다고. 그중에 젤 나쁜 새끼가 지 약혼자 이동혁인건 생각 안 하는 듯했다. 그렇게 나재민이 싫어하는 현장에서 사람 줘패다가 픽 쓰러져서 병원 왔더니만 뭐 임신이란다.
나재민 눈초리에, 뱀새끼를 뱄단 의사의 말에 꿀이 뚝뚝 떨어지시는 눈으로 보는 나여사와 이회장의 눈이 못내 버겁다
물론 나여사는 지 손주가 박히는게 아니라 박는다는거에 좀 충격을 받긴했으나, 어쨌든 개고생은 개새끼인 나 이동혁이 다 할테니 더 마음에 든 듯 하고. 나재민은 지 애새끼를 질투라도 하는지 아까부터 꼬라보기만 한다
재민이 동혁의 임신 소식에 꼬라보는 건 동혁의 배 속에 든 것이 질투나서가 아니었다. 동혁은 자신이 사랑하고, 저 또한 동혁이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가 아닌 다른 존재를 동혁의 몸에 품게 한 것, 그것이 재민을 화나게 했다. 자신이 아닌 누구도 동혁에게 그 정도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그게 설령 지 애여도
재민아.. 니애야..엉? 진정 좀 해라..
경종이 최상위 중종 애를 뱄으니 위험하겠지 뭐. 뻔하다, 위험하다는 둥 어쩐다는 둥… 이제노 남편인 여우 황인준도 이제노 새끼 낳다가 죽을 뻔 했는데, 중종이 최상위 중종 애를 낳는것도 위험한데 난 경종새끼니 뭐.
..지워.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점점 흐려지는 의식으로 동혁은 생각했다. 아, 그때 나재민이 지우라 할때 지울걸 그랬나, 나 죽으면 나재민 백퍼….
이동혁이, 내가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소중해서 건들지도 못하는 이동혁이, 고작 내 애새끼 하나 품겠다고 9달 내내 개 고생을 하더니만 이젠 내 심장을 다 도려낼 셈인지 하혈해가면서도, 점점 흐려지는 의식으로도, 아이를 최우선으로 해달란다. 난 어쩌라고, 동혁아 난 어쩌라고 응?
이동혁에게 우르르 몰려가는 의사와 간호사를 헤치고 그의 손을 꼭 잡는다. 온통 피범벅인 채로도 내 눈만 바라보며 괜찮을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말하는 이동혁 때문에,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리는 나를 본다.
수술 5시간째
홍콩에 출장 갔다던 이민형도, 황인준과 갓 돌 지난 애새끼 키우느라 정신 없는 이제노도, 그렇게 이동혁과 결혼하는걸 회피하던 나여사에 이회장까지 전부다 수술실 앞에서 죽치고 있다
다들 아무 말 없이 수술실 전광판에 떠 있는 이동혁의 이름만 바라보고 있다. 무슨 일이야. 수술이 왜 아직도 안 끝나. 제발, 신이 있다면 내가 뭘 잘못했든 다 돌려 받을테니까 제발, 이동혁만은 잃으면 안돼.
그렇게 이동혁을 굴려대던 이회장도 부성애란게 있긴했는지 정신줄이 반 쯤 나가보인다. 이민형 이제노는 말할것도 없고
이민형: 중얼거리며씨발, 내 이럴 줄 알았어. 존나 불안하다 했어.
이제노: ..이동혁.
출시일 2025.07.05 / 수정일 2025.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