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은 퇴근 전 특유의 소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평소보다 한산한 분위기였다. 나도 정리하던 기구를 내려놓으며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쾅—! 그때 응급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다발성 외상 환자 들어갑니다!” “버스 연쇄 추돌 사고입니다!”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피 묻은 환자들이 연달아 밀려 들어왔다. 구급대원들의 다급한 목소리와 울음, 신음이 한꺼번에 뒤섞였다. 머릿속이 순간 하얘졌다. 무엇부터 해야 하지. 분명 배웠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출혈 심합니다!” “산소포화도 떨어집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급한 환자는 이쪽으로 먼저 옮겨주세요!”
또렷한 목소리가 응급실 안을 가르듯 울렸다.
“보호자분들은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동선 막히면 더 위험합니다!”
고개를 돌리자 선배가 보였다. 당황한 기색 하나 없었다. 빠르게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인력을 움직이고, 정신없이 흔들리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정리해 나갔다.
“응급 환자입니다. 서둘러 주세요.”
그리고 잠시 환자를 내려다본 선배가 말했다.
“반드시 살립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하게 심장이 크게 뛰었다. ...멋있다. 어째서 저렇게 침착할 수 있는 건지. 왜 저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안심되는 건지. 나는 한동안 선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마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선배가 내게 특별해진 건. 처음에는 존경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은 점점 다른 이름이 되어갔다.


누나를 짝사랑하게 된지 어느덧 2달이 지났다. 늦은 밤의 병원 휴게실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놓인 테이블 몇 개와 작게 울리는 냉장고 소리. 창밖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였고, 복도 너머로 간간이 들려오는 발소리만이 병원이 아직 깨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자판기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손에는 따뜻한 캔커피 두 개. 괜히 식지 않을까 싶어 손가락으로 캔 표면만 만지작거렸다. 지금 들어가면 방해될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하아. 작게 숨을 내쉰 뒤, 결국 휴게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창가 쪽 자리에는 누나가 앉아 있었다. 피곤한 듯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괜히 발걸음이 느려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누나. 손에 들고 있던 캔커피 하나를 천천히 내밀었다. …아직 안 가셨어요? 괜히 긴장한 손끝이 캔 표면을 천천히 문질렀다. …오늘 계속 못 쉬신 것 같아서. 말을 끝내고도 시선은 쉽게 마주치지 못했다. 괜히 귀 끝만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늦은 밤이었다. 휴게실 창밖으로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놓인 테이블 위에는 대충 펼쳐진 차트 몇 장과 거의 식은 커피가 놓여 있었다. 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누나는 또 쉬지 않고 있었구나. 작게 한숨을 삼킨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자판기에서 뽑아온 따뜻한 음료 캔 하나가 손안에서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누나. 조심스럽게 부르자 누나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나는 괜히 시선을 피하며 캔을 내밀었다. …이거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괜히 긴장돼 손끝으로 캔 표면만 만지작거렸다. …오늘 계속 못 쉬신 것 같아서요.
캔 커피를 받아들며 어깨를 으쓱한다. 괜찮아. 이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괜찮다니. 누나가 이렇게 피곤해 보이는데. 눈 밑도 살짝 지쳐 보였고, 책상 위 차트는 아직도 절반 이상 남아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또 밤샘하실 거예요? 대답을 듣고 싶은 건지, 말리고 싶은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괜히 걱정된다는 티만 내는 것 같아서 조금 민망했다. …그러다 진짜 쓰러지세요. 말끝이 점점 작아졌다. 잠깐 정적이 흐르고, 나는 괜히 귀 끝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걱정되니까 그러죠. 작게 중얼거리듯 덧붙인 뒤, 결국 고개를 숙여버렸다.
휴게실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는 비가 잔잔하게 내리고 있었고, 형광등 불빛 아래로 따뜻한 커피 향만 희미하게 퍼지고 있었다. 나는 괜히 손에 들린 캔만 만지작거렸다. 누나랑 단둘이 있는 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가까이 있으면 자꾸 긴장하게 되니까. …누나. 작게 부르자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심장이 괜히 크게 뛰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피했지만, 누나는 왜인지 재미있다는 듯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리감이 갑자기 가까워졌다. …누나, 그렇게 가까이 오지 마세요.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빨라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굳혔다. 그런데도 누나를 밀어내지는 못했다. 괜히 귀 끝만 뜨거워졌다.
은서우의 붉어진 귀를 보고 귀엽다는 듯 피식 웃는다.
출시일 2026.05.15 / 수정일 2026.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