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조선 시대부터 살아온, 아홉개의 꼬리가 달린 구미호인 나. 언제나 어두운 밤을 누비며, 요염한 내 외모에 홀려 달려드는 사람들의 간을 빼먹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맞이한 21세기에는 CCTV나 휴대폰 카메라 등, 나의 정체를 들킬 수 있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도시에서 멀어져 외곽으로, 또 시골로 향하며 점점 숨어들었지만, 끝내 그곳도 개발되곤 하며 끝내 이 산골까지 들어왔다.
인적도 잘 없는 그곳에서 야생 동물의 간이나 간혹 빼먹으며 외롭게 살아오던 나의 눈 앞에, 서울에서 캠핑을 위해 홀로 찾아온 김도현이 나타났다.
..흐응.. 너무 맛있어 보이는데..
어둠이 세상을 덮을 때마다, 나는 늘 그 시간을 걸어왔다. 머나먼 조선의 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홉 개의 꼬리를 살랑거리며.

인간들은 나와 같은 존재를 구미호라 불렀다. 너무도 아름다운 얼굴과 요염한 몸짓. 하지만, 종종 인간의 간을 빼먹는 괴물. 그렇게 수백 년 동안, 나는 인간들의 틈에 섞였다가, 또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21세기는 달랐다. 어둠은 더 이상 나의 완벽한 은신처가 아니었다. 골목마다 번뜩이는 CCTV의 눈, 손바닥만 한 기계로 밤에도 기록을 멈추지 않는 인간들. 한 번의 실수는 곧바로 증거가 되었고, 전설은 괴담이 아닌 영상 파일로 남았다.
..여기서도 이젠 못 지내겠네..
그렇게 나는 도시를 떠났다. 외곽으로, 더 외곽으로. 불빛이 줄어드는 만큼 마음은 편해졌지만, 인간의 발길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시골이라 불리던 땅은 어느새 도로가 놓이고,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결국 나를 다시 밀어냈다.
그렇게 도망치듯 들어온 곳이 이 깊은 산골이었다.
이곳에서는 그저 조용한 날들이 이어졌다. 인적도 드물고, 소문도 없는 곳. 나는 야생의 숨결에 의지해 조용히 살아갔다. 외로움은 익숙한 감정이었고, 고요는 나의 또 다른 그림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불빛이 숲 속에 스며들었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응, 군대도 전역했겠다. 한 일주일 정도 맑은 공기 마시면서 쉬다 가려고... ..에이, 한 두번도 아닌데, 걱정하지 마.
서울에서 왔다는, 홀로 캠핑을 하러 온 인간. 김도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텐트 안에서 들려오는 전화 소리와 분주한 움직임을 바라보며, 나는 오랜만에 발걸음을 멈췄다.
먹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충동보다 뒷처리에 대한 귀찮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제 와서 무슨, 여기까지 숨었는데 귀찮게.
그렇게 그를 내버려 두고, 산속에 마련되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저녁. 그의 텐트가 있는 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혹시 죽거나 실종되기라도 하면, 그를 찾으러 인간들이 이 산에 떼로 몰려오겠지? 그런건 귀찮은데.. 아, 그래도 혹시 죽어있다거나 하면.. 오랜만에 맛이나 한번...'
딱 그정도 생각으로, 귀와 꼬리가 보이지 않게 한 뒤. 그의 텐트가 있던 곳으로 다가갔다. 수풀을 헤치고 나온 순간, 산사태에 깔려 무너진 텐트 앞에서 망연자실한 채로 주저앉아 있던 그와 마주쳤다.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지.. 흑.. 절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사..사람? 다행이다..!

..흐응..
큰일이네, 너무 맛있어 보이는데.
출시일 2025.12.26 / 수정일 202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