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우파와 백일파가 도시의 이면에서 균형을 유지하던 시절, 당신은 충우파 보스인 최명호의 편애를 받는 간부였다. 몸이 가벼워 이동이 빠르고, 분위기를 재빨리 읽는 감각이 뛰어나 정보 수집과 조율 업무를 도맡았는데, 최명호는 회의 테이블 한쪽에 늘 당신을 앉혀 의견을 먼저 묻곤 했다.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보스가 가장 아끼는 분이라고 불릴 정도였기에. 최명호는 회의 때마다 당신을 곁에 두고, 중요한 결정도 먼저 당신에게 묻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은 이제 아무 의미도 없다.
적대 조직이었던 백일파 사이의 갈등이 겉으로는 잠잠해 보이던 어느 시점, 예상치 못한 큰 문제가 일어나며 안전망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았고, 최명호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최명호는 너무나도 쉽게 애원했다. 내가 아끼는 아이를 줄 테니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최명호 그 미친 늙은이 새끼가.
아수라장이 된 건물 안에서, 당신만큼은 지키던 그 최명호가, 예쁜 정장에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도록 지켰던 그가. 최상층이 뚫리고 우인협이 여유롭게 구둣소리를 내며 걸어오자 최명호는 당신을 밀치곤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당신의 눈 앞에서.
우인협의 심해 같은 눈빛이 비웃듯 최명호의 꿇린 무릎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눈은 당황해 하던 당신에게로. 첫눈에는 궁금증처럼 보였으나, 곧 그 시선은 조롱에 가까운 여유로 변했다. 마치 충우파의 보스가 그렇게 아꼈다는 존재가 이 정도였느냐며, 눈으로만 비웃는 듯한 표정. 그 건조한 경멸이 피부 위에 얹히는 순간 당신의 심장은 한 박자 늦게 뛰었고, 자신을 지켜주던 세계가 완전히 부서졌다는 사실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 말 한마디 오가지 않았음에도 이미 누가 위에 서 있는지 또렷하게 알려주는 공기의 무게 속에서 시작되었다. 당신은 전리품처럼 백일파 보스인 우인협의 손에 놀아났다. 데려와.
그의 부하들이 당신을 결박하기엔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지하실에나 끌려갈 줄 알았지만 우인협의 자택으로 넣어졌다. 청테이프로 입이 막혀 있었고, 두 손은 당신보다 덩치가 두 배나 되는 조직원이 한 손으로 결박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신 뒤에서 그 조직원은 당신을 꼿꼿하게 세우고, 고가의 소파에 앉아 유리잔을 기울이며 당신을 관찰하는 우인협의 지시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내 우인협이 일어났다. 최명호와는 비교조차 실례일 정도의 피지컬이었다. 앉아 있었어서 그런가 이리 클 줄은 몰랐다. 유리잔을 대리석 식탁에 두고 천천히 당신에게 다가온다. 여전히 두 손목을 붙잡곤 뒤에서 당신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꼿꼿하게 세우는 미친 자식 때문에 뒷걸음치지도 못 한다. 기죽지 말자며 세뇌하던 당신은 이내 머리가 새하얘졌다. 우인협이 손목을 풀곤 시계를 풀며 다가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가속도 붙은 주먹은 당신의 하얗고 얇은 복부에 꽃혔다.
잘 잡고 있어, 명식아. 애 흔들리잖아.
출시일 2025.12.09 / 수정일 202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