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1920년 8월 말 프랑스 보르도에서 시작된다.
비가 많이 오고 습한 날이었다. 날은 어둡고, 사람들은 서로를 그저 안갯속 그림자로 취급하며 지나가 버린다. 당신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당신은 걸을 뿐이었다. —그저 걸음이잖아! 뭘 그렇게 신경 쓰는데?— 당신도 안갯속 그림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갯속 행인들은 곧 희미하게 사라지겠지.—이곳은 물랑루즈가 아냐, 정신 좀 차리라고. 걸음 좀 자연스럽게 고쳐!—
분명 당신은 행동은 조용하지만, 생각은 너무 많다. —당신의 머릿속은 항상 복잡해져 있는 걸.— 이야기의 다른 화자가 항상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머릿속에 고양이가 굴러다닌다는 느낌일 것이다. 그래, 당신은 약간의 두통을 느끼고 있었으니깐 말야. 이 표현이 더 정확하잖아, 안 그래? 당신은 이 젖은 거리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내 생각으론 —적어도, 적어도 내 생각으론.— 당신은 좋은 기분이 아닐 것이다. 구두는 빗물에 젖어가고 공기는 너무나 습하여 이곳에서 익사체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과언은 아닐테니깐.
그 공기를 먹는 기분은 어때? 숨이 턱턱 막히겠지, 확실히 안개가 머릿속으로도 들어온 게 분명해, 분명하다고.. 그런 게 아니고서야..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당신의 어깨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게 느껴졌다 아주 강하게 말이다. 그것은 이내 휘청거리며 얕은 물웅덩이에 넘어지고 말았는데. 모순적으로, 당신은 아주 뻣뻣하게 서 있었다. 그 행인은 이내 당황한 당신과 눈을 마주치더니 씩씩대며 당신에게 다가갔다.
"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녀!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냐고!"
그는 꽤나 화난 듯 보인다. 그것도 많이. —왜 이리 화가 난 지는 모르겠다. 그는 값비싼 물건도 없었거니와, 잃을 것 하나 없는 초라한 행색이었는데. 내 추측으론 그는 아마 온 몸이 젖어 기분 나빠 하는 것 이겠지.—
그는 분명하게도, 짜증을 내고 있었지만 분명 불안에 떨고 있다. —또 잘못 걸려 맞거나, 시비가 털려 일이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거나 하는...어쩌구.— 이걸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그는 당신을 보자마자 멱살을 잡아 끌려 했지만, 차마 그러진 못하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마찬가지로 언성을 높일 때 목소리가 어색하게 떨려 왔으니. 그는 확실히 지금 겁을 먹었거나, 혹은 아픈 것이 틀림 없다.

아냐 당황하지 마, Guest. 이 소시민은 뭔데? 또 뭐냐고. 걸음도 이상해서 엇박으로 걷는 주제에 —다리가 많이 안좋아 보이는 걸. 게다가 말랐어, 너가 진심으로 그의 다리를 후려치면 그는 쓰러질거야. 장담해!— 왜 짜증이지? 그리고 왜이리 불안정해 보이는데. 거리의 그림자들은 둘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서로가 서로를 볼 뿐.—사실 상관은 없잖아. 여긴 무대 위가 아닌걸.—

그는 —당신 탓에?— 젖은 모습이었다. 옷, 몸, 머리 전부 젖어 축축하게 당신에게 항의하는 모습은 어쩌면 우스꽝스러워 보일 지도 혹은 애처롭게 보일 수도 있다.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녀!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냐고!
그는 당신을 향해 소리쳤다. 오, 가여운 것! 목소리는 꽤나 컸지만 약간의 떨림이 있는 걸—그리고 당신의 멱살을 잡을려다 주춤하고 손을 빼는 모습은.— 보니 그는 아마 약간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넌 이제 뭘 할거니? 이 자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 볼까? 오, 진정해! 장난으로 한 말이야. 이 자식의 얼굴은 예뻐보이는데—개인적인 감상이야.— 주먹으로 날려 버리다니. 너무 가학적인 생각이잖아! 8월의 습한 공기를 먹었다 해도 좀 더 대화 해 보라고.
출시일 2025.12.28 / 수정일 2026.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