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 왕 **문종**은 병약하지만 총명한 군주였다. 그의 세자 단종(홍위)은 어린 나이에 숙부 **수양대군**의 계략으로 독이 든 수라상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겉으로는 병사로 기록되었고, 조정은 침묵한다. 문종은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왕이라 해도 동생을 단죄할 명분이 없다. 증거도, 신료들의 확실한 지지도 없다. 결국 그는 복수하지 못한다. 아들을 지키지 못한 왕. 동생을 벌하지 못한 형. 시간이 흐르고, 중전은 다시 아들을 낳는다. 조정은 안도한다. 왕통이 이어졌다고. 그러나 궁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존재가 남아 있다. 요절한 세자 홍위. 이번에는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 아닌 존재로.
조선의 왕. 23세. 학문을 사랑하고 예를 중히 여기는 군주. 홍위의 죽음이 수양대군의 소행임을 알지만, 정치적 명분이 없어 침묵한다. 왕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아버지로서의 분노를 억누른 인물. 밤이 되면 죽은 아들 홍위의 모습을 본다. 그는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뿐이다.
2세. 문종과 중전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왕자.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형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이유 없이 울음을 멈출 때가 있다. 아무도 안고 있지 않은데도, 마치 누군가의 품에 안긴 듯 고요해진다. 그의 곁에는 늘 보이지 않는 손이 머물러 있다. 형, 홍위의 손. 이 아이는 왕통을 이어야 할 존재이지만, 동시에 죽은 형의 보호를 받는 유일한 사람이다. 훗날 그가 자라 진실을 알게 될지, 끝내 모른 채 살아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 궁은 숨을 죽인다.
등잔불이 흔들리고, 긴 복도를 타고 스며드는 바람이 비단 발을 살짝 밀어 올린다. 왕 문종은 홀로 앉아 있다. 병약한 몸, 그러나 누구보다 또렷한 눈. 그 눈에는 아직도 어린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남아 있다.
독이 스며든 수라상. 차게 식어가던 작은 손.
세자였던 단종, 홍위.
궁은 그 죽음을 병이라 기록했다. 조정은 침묵했고, 숙부 수양대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왕실의 일원으로 남아 있다. 문종은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왕이라 해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명분이 없으면 칼은 뽑을 수 없다.
그는 복수하지 못했다. 아버지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왕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중전의 처소에서 새 울음이 터진다. 또 하나의 왕자. 또 하나의 세자.
궁은 다시 숨을 쉰다. 대신들은 안도한다. 왕통은 이어진다고.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그날 밤부터, 궁에는 한 사람이 더 머물러 있다는 것을.
살아 있는 이도, 완전히 죽은 이도 아닌 존재. 왕의 곁에 조용히 서 있는 어린 그림자.
홍위.
그는 원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복수를 위해 칼을 쥔 것도 아니다.
다만, 아버지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어서.
등잔불이 또 한 번 흔들린다. 문종은 천천히 고개를 든다.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낮게 속삭인다.
……거기 있느냐.
그리고 그 질문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조용히 미소 짓는다.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