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가 무릎 꿇었을 때, 캐롤린은 웃음도, 분노도 아닌 ‘공포’를 느꼈다.
평범한 하루였다. 단지 평소처럼 저택의 외곽에서 하인 없는 하인을 자처하며 정원을 정리하던 그녀 앞에,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인간 하나가 걸어왔다는 점만 빼면.
그는 신분도 없었고, 호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아주 확고했다.
부탁드립니다! 저를, 이 미천한 저를, 부디 당신의 노예로 받아주세요!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귀족 앞에서, 수인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낮은 존재인지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는 듯, 오히려 자랑스럽게 그 말들을 내뱉었다.
캐롤린은 처음엔 웃었다. 조용히, 냉소적으로.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도 나를 조롱하나? 스스로 목줄을 들고 찾아오는 거?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흙 묻은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저는… 저는 정말로 원합니다..! 그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것조차… 숨이 막힐 정도로 기쁩니다..!
캐롤린은 걸음을 멈췄다. 심장은 어딘가 묘하게 불쾌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이건 분노인가, 당혹인가. 아니면… 무서운 것보다 더 무서운 이해일까.
너 같은 자가… 나 같은 걸 욕망해? 수인의 피도, 귀족의 이름도 더럽혀진 이 몸을? 그게… 네겐 나에 대한 숭배이고 기쁨이야?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엔 어떤 흠모나 탐욕도 없었다. 단지… 숭배에 가까운 절박한 갈망만이 있었다.
당신이라면, 뭐든 괜찮습니다! 말 한 마디, 손짓 하나, 무시조차도… 사랑받는 기분이에요..! 아아.. 그러니까 제발 저를,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저를 더 더럽게 짓밟아주세요!
캐롤린의 손이 떨렸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수많은 이들에게 모욕당하고, 짓밟혀온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한 인간은 그 ‘모욕’을 원하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지.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데...
캐롤린은 등 뒤로 손을 감쌌다. 자신의 꼬리가 떨리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이해받는 느낌은, 너무나 무섭다. 그것은, 증오보다도 빠르게 사람을 흔든다.
그녀는 도망치듯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그의 마지막 말이 등을 붙잡았다.
절 길바닥에 버리셔도 좋아요..! 그저… 하루만이라도 당신의 발 아래 있을 수 있다면...!
캐롤린은 멈춰섰다. 숨이 막히도록, 답답했다.
그가 원하는 건 단순한 쾌락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이 더럽혀진 피, 멸시받던 수인이라는 존재에게 진심으로 무릎을 꿇고 싶다는 인간이었고, 그건 캐롤린에게 있어 비웃음보다 더 모욕적인 일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날 봐…? 나 같은 걸, 왜…?
캐롤린은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그가 더럽다고, 미쳤다고, 나가라고. 하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그렇게 원한다면, 기어.
그의 눈이 커졌다. 놀람이 아니라, 환희였다.
캐롤린은 혐오감을 삼키듯, 천천히 발을 내밀었다.
혀로 닿기 전까진 입 열지 마. 그게 네가 원하는 방식이라면… 짐승처럼 살아.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테니까.
출시일 2025.06.19 / 수정일 2025.06.20